에르메스 아카이브에서 찾은 187년의 비밀 - 말 안장에서 버킨백까지
아카이브 자료 분석을 통한 브랜드 진화 과정
안녕하세요, 브랜드 헤리티지 연구자 이안 박입니다.

브랜드 서재의 첫 번째 이야기로, 오늘은 주황색 상자로 유명한 **에르메스(Hermès)**의 아카이브를 열어보려 합니다. 많은 분들이 에르메스를 ‘버킨백’, '켈리백’으로 기억하시겠지만, 이 브랜드의 진짜 이야기는 1837년 파리의 한 마구(馬具) 공방에서 시작됩니다.
오늘은 에르메스가 보관하고 있는 187년간의 기록을 따라, 말 안장 제작자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럭셔리 하우스로 진화했는지 그 여정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837년, 파리 바스 뒤 랑파르 거리의 작은 공방
에르메스의 이야기는 화려한 패션쇼장이 아닌, 1837년 파리 9구의 좁은 골목에서 시작됩니다.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가 바스 뒤 랑파르(Basse-du-Rempart) 거리에 연 작은 마구 공방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죠.

당시 파리는 마차의 도시였습니다. 귀족들의 화려한 마차가 거리를 누비던 시대, 티에리 에르메스는 단순히 ‘튼튼한’ 말 안장이 아닌, ‘완벽한’ 말 안장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에르메스 아카이브에 남아있는 초기 주문 장부를 보면, 고객의 이름, 말의 체격, 용도(사냥용, 마차용, 군사용)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라는 기술입니다. 기계 박음질과 달리 장인이 두 개의 바늘로 실을 교차해 꿰매는 이 방식은, 실 한 올이 끊어져도 전체가 풀리지 않는 견고함을 자랑했습니다. 거칠게 달리는 말 위에서 기수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던 말 안장에는 필수적인 기술이었죠.
흥미롭게도, 오늘날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에르메스 가방들이 여전히 이 새들 스티치로 만들어집니다. 187년 전 말의 안전을 위해 개발된 기술이, 지금도 에르메스 제품의 핵심 정체성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등장과 에르메스의 선택
20세기 초, 에르메스에게 존망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자동차의 등장으로 마차 산업이 급속히 쇠퇴한 것이죠. 대부분의 마구 제작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때, 3대 경영자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Émile-Maurice Hermès)는 남다른 통찰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것은 말 안장이 아니라, 완벽한 가죽 제품이었다.”
에밀 모리스는 마구 제작에서 쌓은 가죽 가공 기술과 장인정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제품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1922년 여성용 핸드백이 처음 등장했고, 1935년에는 현재 '켈리백’으로 알려진 '사크 아 크루아(Sac à Courroies)'가 탄생했습니다.

여기서 에르메스의 철학이 드러납니다. 그들은 단순히 '유행’을 쫓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동 수단이 바뀌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물건을 운반해야 한다"는 본질에 집중했습니다. 말 안장을 만들던 그 손으로 가방을 만들었고, 고삐를 엮던 기술로 핸들을 완성했습니다.
깔레쉬 로고에 숨겨진 철학 - 비워진 마차의 의미
에르메스의 정체성 전환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1940년대 중반에 탄생한 '깔레쉬(Calèche)' 로고입니다.
이 로고는 19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동물화가 **알프레드 드 드뢰(Alfred de Dreux)**의 마차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당시 에르메스 가문이 수집하고 있던 마구 관련 예술품 중 하나였죠. 하지만 에르메스는 원작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의미 있는 변화를 가했습니다.

로고를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아한 사륜마차와 준비된 말, 그리고 마부까지는 모두 그려져 있지만, 정작 마차에 탈 승객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에르메스 3대 경영자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의 깊은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에르메스는 최고의 도구를 준비하지만,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사용하는 사람의 몫이다."
즉, 에르메스는 완벽한 말과 마차, 숙련된 마부까지는 제공하지만, 그 위에 앉아 여행의 방향을 정하고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온전히 고객 자신의 선택과 의지라는 메시지입니다.
이는 1837년 말 안장을 만들던 티에리 에르메스의 태도와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는 기수의 안전을 위해 최고의 안장을 만들었지만, 말을 어디로 몰고 갈지는 기수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도구는 완벽해야 하지만, 주인공은 언제나 사용자여야 한다는 철학이죠.
흥미롭게도 자동차 시대가 열린 후에도 에르메스는 로고를 자동차나 비행기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말과 마차로 남겨둔 것은 **"우리의 뿌리와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조용한 선언이었습니다.
에르메스 제품을 받을 때 주황색 상자 위의 작은 로고를 한번 유심히 보시길 권합니다. 그 안에 187년간 지켜온 에르메스의 겸손하면서도 확고한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니까요.
1984년, 비행기 안에서 탄생한 전설
에르메스의 가장 유명한 아이콘인 '버킨백’의 탄생 이야기는 브랜드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1984년 파리발 런던행 비행기 안에서, 에르메스의 CEO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는 영국의 배우이자 스타일 아이콘인 제인 버킨(Jane Birkin) 옆자리에 앉게 됩니다. 제인 버킨이 짐을 선반에 올리다가 가방 내용물이 바닥에 쏟아지자, 그녀는 "실용적이면서도 우아한 가방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장 루이 뒤마는 그 자리에서 냅킨에 스케치를 시작했고, 1년 후 전설적인 '버킨백’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 가방은 에르메스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던 기존의 ‘오 끄루아(Haut à Courroies)’ 여행 가방을 변형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화에서 중요한 것은 우연한 만남 자체가 아닙니다. 에르메스가 150년 가까이 지켜온 태도, 즉 **“사용자의 실제 필요를 듣고, 장인의 기술로 해결한다”**는 철학이 여전히 살아있었다는 점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의 힘
187년의 시간 동안 에르메스는 많은 것을 바꿨습니다. 말 안장에서 가방으로, 마구에서 스카프와 향수로 제품군을 확장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변하지 않은 원칙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장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제품을 완성한다.”

에르메스의 가방에는 제작한 장인의 고유 번호가 새겨집니다. 공장 시스템처럼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장인이 가죽을 재단하고, 바느질하고, 마무리까지 책임집니다. 버킨백 하나를 완성하는 데 숙련된 장인 한 명이 18시간 이상을 투입합니다.
이 방식은 비효율적입니다. 느리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하지만 에르메스는 이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정체성이라고 믿습니다. 1837년 파리 골목의 마구 공방에서 티에리 에르메스가 말 안장 하나를 완성하던 그 방식을, 2026년에도 똑같이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카이브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에르메스의 간판 표기도 흥미로운 변화를 보입니다. 초창기에는 "Hermès, Sellier(마구 제작자)"였던 것이 점차 "Hermès, Paris"로 단순해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 변경이 아니라, '특정 물건을 만드는 회사’에서 '하나의 세계관을 제안하는 하우스’로의 정체성 변화를 보여줍니다.
시간이 증명한 가치
에르메스의 시그니처 주황색도 우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42년 2차 세계대전 중 물자 부족으로 기존의 크림색 상자를 만들 수 없게 되자, 창고에 남아있던 주황색 판지를 사용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고객들이 오히려 이 주황색을 더 선호한다는 것을 발견한 에르메스는, 이를 브랜드 컬러로 공식 채택했죠.
위기를 기회로 만든 순간이었습니다. 현재 팬톤 컬러 144번으로 등록된 '오렌지 에르메스(Orange Hermès)'는 이제 전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주황색이 되었습니다.

에르메스의 역사를 읽으며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진정한 럭셔리는 화려함이나 높은 가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증명해주는 일관성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에르메스는 187년 동안 같은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정확하고, 더 오래 가는 것을 만들 수 있을까?”
말 안장에서 버킨백까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에르메스의 진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에르메스 제품에 지불하는 비용은 단순히 가죽값이 아닙니다. 그것은 1837년부터 이어져 온 '시간의 값’이며, 기계가 흉내낼 수 없는 '사람의 손길’에 대한 경의입니다.
소유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 브랜드가 걸어온 길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에르메스가 전하려는 진짜 가치를 충분히 누린 것이니까요.
다음 브랜드 서재에서는 샤넬 No.5 탄생 비화를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와의 잊혀진 편지들 속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참고 자료:
- Hermès Official Heritage Archive
- “Hermès: The Story of a Family Business”
- Fashion History Timeline (FIT)
브랜드 서재 by 이안 박
“소유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럭셔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