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서가] 농심 새우깡 — 반세기 넘게 변하지 않은 봉지 속 바다의 경제학
[편의점 서가] 농심 새우깡 — 반세기 넘게 변하지 않은 봉지 속 바다의 경제학
안녕하세요, 브랜드 헤리티지 연구자 이안 박입니다.
오늘은 편의점에서 과자 한 봉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주황빛 봉지. 생새우 일러스트. 그리고 반세기를 훌쩍 넘겨 살아남은 이름, 새우깡.
지난 편에서 다룬 파텍 필립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 무브먼트로 “이 시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을 브랜드로 삼았다면, 농심 새우깡은 정반대의 질문으로 반세기를 버텼습니다.
“이 과자를 먹어보지 않은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복잡성으로 가치를 증명한 파텍과, 단순함으로 반세기를 살아남은 새우깡. 오늘은 이 정반대의 철학이 만들어낸 각각의 헤리티지를 브랜드 서재의 시선으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971년, 한국 최초의 스낵이 탄생한 날
1971년 한국의 과자 시장은 캔디, 건빵, 비스킷류가 중심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편의점 진열대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스낵’이라는 카테고리는 아직 낯선 개념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롯데공업, 지금의 농심은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과자”라는 개념을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들고 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자의 이름 역시 신춘호 회장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입니다.
개발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신 회장의 막내딸 신윤경이 아리랑을 “아리깡 아리깡 아라리요”처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깡’이라는 발음이 귀에 걸렸습니다. 새우와 깡. 두 음절의 결합이 만들어낸 새우깡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이미 브랜드 자산이었습니다.
발음하기 쉽고, 기억하기 쉽고, 무엇이 들어 있는지 직관적으로 전달되는 이름. 브랜드 네이밍 전략에서 이런 이름은 강합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우깡은 그런 점에서 매우 투명한 이름을 가진 브랜드였습니다.
새우깡이 태어날 무렵, 일본에는 이미 카루비, 즉 Calbee의 캇파 에비센이 있었습니다. 캇파 에비센은 1964년에 출시된 새우 스낵입니다. 또한 동남아시아 각지에서도 새우를 활용한 프론 크래커류는 오래전부터 식문화의 일부로 존재했습니다. 새우의 바다 풍미는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는 보편적인 맛이었으니, 어떤 의미에서 새우 스낵은 지역을 초월한 아이디어였습니다.
따라서 새우깡을 둘러싼 원조 논란은 가볍게 언급할 수는 있지만, 이 글에서 더 주목하고 싶은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였는가”만이 아니라, 농심이 이 맛을 어떻게 한국인의 국민 과자로 번역했는가입니다.
그 차별점의 핵심이 바로 파칭(Parching) 공법입니다. 새우깡은 일반적인 유탕 과자처럼 기름에 튀기는 방식이 아니라, 달구어진 소금의 열을 이용해 구워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방식은 새우의 풍미를 기름 냄새에 덮이지 않게 살려내면서도, 새우깡 특유의 담백하고 바삭한 질감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제조법의 기본 원리는 반세기가 넘은 지금도 새우깡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변하지 않기 위해 변한다” — 새우깡 헤리티지의 역설
브랜드 연구자로서 새우깡을 바라볼 때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새우깡은 분명히 변했습니다. 포장 디자인이 수차례 개편되었고, 매운새우깡·쌀새우깡·새우깡블랙 같은 파생 라인업도 탄생했습니다. 2022년에는 새우깡·매운새우깡·쌀새우깡·새우깡블랙을 포함한 새우깡 브랜드군이 출시 51년 만에 연 매출 1,000억 원 규모의 메가 브랜드 반열에 올랐습니다.
또한 2024년 말 기준 누적 매출액은 약 2조 4,000억 원, 누적 판매량은 86억 4,000만 개를 기록했습니다. 2021년 기준 82억 봉이라는 기록을 이미 넘어선 수치입니다.
그런데도 왜 소비자들은 “새우깡은 변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걸까요?
답은 변화의 층위에 있습니다.
새우깡이 바꾼 것은 표면이었습니다. 포장의 금박 디테일, 새우 일러스트의 크기, 유통 채널의 다변화, 파생 제품의 확장. 그러나 새우깡이 끝까지 지킨 것은 본질이었습니다. 파칭 공법, 고소하고 짭짤한 맛의 균형, 그리고 개발 당시부터 내려온 “푸짐한 양과 품질에 대한 신뢰”라는 내부 철학.

이것이 브랜드 세계에서 말하는 일종의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입니다. 어떤 경쟁사도 쉽게 복제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반세기에 걸쳐 쌓인 맛의 기억이었습니다.
브랜드와 소비 구조를 경제적 관점에서 더 읽고 싶으신 분은 오십보의 경제읽기 — [초보자 공부노트] **ETF 입문 - 개별 종목이 어려울 때 선택하는 ‘과일 바구니’ 전략**편과 **50대 황금 포트폴리오 -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비빔밥 전략’**편을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깡’ 바이럴이 보여준 헤리티지의 힘
2020년, 새우깡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비의 ‘깡’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밈(meme)으로 폭발하면서 ‘깡’ 시리즈 전체가 동반 재조명을 받은 것입니다. 새우깡, 감자깡, 고구마깡, 양파깡, 그리고 옥수수깡까지. 오래된 브랜드 이름에 붙어 있던 ‘깡’이라는 두 글자가 갑자기 Z세대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해 새우깡은 다시 젊어졌습니다. 2020년 12월 초 기준 새우깡 매출은 810억 원을 기록했고, 깡스낵 전체의 매출 성장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바이럴 현상이 새우깡이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새우깡은 그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화가 그 브랜드를 다시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헤리티지 브랜드의 가장 강력한 자산입니다. 만들어낼 수 없고, 오직 쌓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것.
이 구조는 앞으로 브랜드 서재와 오십보의 경제읽기에서 함께 다룰 스노브 효과와도 흥미롭게 대비됩니다. 스노브 효과가 “모두가 갖는 순간 가치가 사라진다”는 희소성의 논리라면, 새우깡은 정반대입니다.
“모두가 안다”는 사실 자체가 브랜드 가치가 되는 구조.
즉, 새우깡은 친숙함이 해자가 된 경우입니다.
86억 4,000만 개가 말해주는 것
86억 4,000만 개.
새우깡이 1971년 출시 이후 2024년 말까지 쌓아온 누적 판매량입니다.

이 숫자를 단순한 실적 지표로 읽으면 절반밖에 읽지 못한 것입니다. 브랜드 서재의 시선으로 읽으면 다른 이야기가 보입니다.
86억 4,000만 개는 86억 번이 넘는 소비 경험입니다. 어린 시절 운동회 날 받아먹던 기억, 야구장 관중석의 기억, 편의점 야식의 기억, 가족 여행길 휴게소에서 뜯던 주황빛 봉지의 기억. 브랜드는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파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우깡은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한국인의 집단 기억 속에 자신을 축적해왔습니다.
이 점에서 새우깡의 브랜드 구조는 조만간 브랜드 서재에서 다룰 국순당의 이야기와도 맥이 닿습니다. 국순당이 박봉담 양조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통해 헤리티지를 체험 자산으로 전환하고 있다면, 새우깡은 봉지 하나를 통해 50년 넘는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파칭의 온도와 발효의 시간. 서로 다른 방법이지만 시간이 만드는 깊이라는 본질은 같습니다.
발효와 시간이 어떻게 브랜드 자산이 되는지 더 읽고 싶으신 분은 오십보의 경제읽기 — **[시장의 식탁 | 술의 경제학 1편] 산토리 하이볼 — 어떻게 ‘어른의 술’은 생활 소비재가 되었을까**와 **[쌀과 시장 1편] 닷사이 23, 쌀의 77%를 버리고 세계를 얻다**를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쫀쿠의 맛있는 이야기에서는 **빵, 떡, 그리고 누룩의 시간**편에서 발효가 시간을 어떻게 감각으로 바꾸는지를 더 친근한 언어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핵심 메시지 재정리
오늘 우리는 주황빛 봉지 하나에서 1971년 한국 최초 스낵의 탄생, 막내딸의 노래에서 건져 올린 브랜드 네이밍, 파칭 공법이라는 기술적 선택, “변하지 않기 위해 변한다”는 역설적 헤리티지 철학, 그리고 86억 4,000만 개라는 집단 기억까지 함께 읽었습니다.
새우깡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본질을 지키는 용기
시장이 변해도, 트렌드가 바뀌어도, 파칭 공법과 “고소하고 짭짤한 균형”이라는 본질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브랜드의 해자는 기술만으로 쌓이지 않습니다. 오래 지켜낸 철학 위에 쌓입니다.
둘째, 헤리티지는 선언이 아니라 축적입니다
새우깡은 스스로 “우리는 헤리티지 브랜드입니다”라고 선언한 적이 없습니다. 반세기 넘게 그 자리에 있었을 뿐입니다. 진짜 헤리티지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입니다.
셋째, 단순함도 전략입니다
파텍 필립이 복잡성으로 프리미엄을 만들었다면, 새우깡은 단순함으로 보편성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전략이 옳은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전략을 끝까지 일관되게 밀고 나갔는가의 문제입니다.
다음 번 편의점에 들르실 때, 새우깡 봉지를 한번 유심히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그 주황빛 포장 안에는 막내딸의 노래에서 건져 올린 이름, 소금 열로 구워낸 파칭 공법의 온기, 그리고 반세기 넘게 쌓인 한국인의 집단 기억이 모두 담겨 있으니까요.
“Omnia mutantur, nihil interit.”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 Ovidius,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 중
- Omnia: 모든 것
- mutantur: 변한다
- nihil interit: 아무것도 소멸하지 않는다
새우깡의 포장은 여러 번 바뀌었고, 라인업도 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맛이 불러오는 기억은 소멸하지 않았습니다. 오비디우스가 기원전에 쓴 이 문장이 2026년의 편의점 진열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입니다.
소유하지 않아도, 주황빛 봉지 하나 안에 담긴 반세기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이 오래되고 따뜻한 헤리티지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 셈입니다.
📌 다음 글 예고
[편의점 서가 17편] 국순당 백세주 — 발효가 만든 브랜드, 박봉담 양조장이 지킨 철학
파칭 공법이 새우깡의 본질이었다면, 누룩과 발효의 시간은 국순당의 본질입니다. 전통주가 어떻게 헤리티지를 체험 공간으로 전환했는지, 박봉담이라는 물리적 장소가 브랜드 자산이 되는 과정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오십보의 경제읽기에서 양조장이 스마트팜을 지은 이유와 이어지는 세계관입니다.
📚 참고 자료
- 농심 새우깡 공식 브랜드 페이지
https://brand.nongshim.com/saewookkang/main/index - 농심 공식 새우깡 탄생 이야기
https://www.saewooggang.com/story/create_saewookkang - 농심 공식 보도자료 〈농심 새우깡, 최초로 1천억 원 브랜드 등극한다!〉, 2022
https://www.nongshim.com/promotion/notice/press_view?groupCode=003&groupId=648&searchValue=콜라보&page=11 - Calbee 공식 제품 연혁, Kappa Ebisen 1964년 출시
https://www.calbee.co.jp/en/corporate/history/product.php - 한겨레 〈신라면·새우깡·짜파게티, 그 익숙한 이름의 작명가 신춘호〉, 2021
https://www.hani.co.kr/arti/economy/consumer/988449.html - 뉴스핌 〈농심, 새우·옥수수깡 등 깡스낵 매출 역대 최초 1천억〉, 2020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01216000220 - EBN 〈50년째 ‘손이 가는’…과자계 절대강자 농심 ‘새우깡’〉, 2026
https://www.e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9874
브랜드 서재 by 이안 박
읽을 수 있는 럭셔리를 찾아서, 오늘도 서가의 한 칸을 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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