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서가] 챠챠(洽洽) — 차차춤에서 시작한 씨앗 하나가 중국 간식 시장을 삼킨 방법
[편의점 서가] 챠챠(洽洽) — 차차춤에서 시작한 씨앗 하나가 중국 간식 시장을 삼킨 방법
들어가며 — 편의점 선반 위의 작은 빨간 봉지
국내 편의점 과자 코너를 천천히 훑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빨간 봉지가 하나 있습니다. 한자 두 글자, 洽洽. 발음은 챠챠(qià qià). 봉지 안에는 해바라기씨. 하나씩 까먹으면 멈추기가 어려운 그 간식입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에서 해바라기씨는 "주전부리라기보다는 새 모이 혹은 그라놀라 재료"였습니다. 지금 편의점 선반 위에 챠챠 봉지가 당연하게 앉아 있는 것, 그게 이미 이 브랜드가 해낸 일의 증거입니다.

오늘은 물에 삶아 차별화하고, 문화 카드 하나로 품격을 만들고, 농촌을 먼저 뚫어 도시를 포위한 — 챠챠(洽洽)의 이야기입니다.
1장 — 빙과에서 씨앗으로: 창업자 천셴바오의 피벗
챠챠의 창업자 **천셴바오(陈先保)**는 처음부터 씨앗 장사를 한 사람이 아닙니다. 1980년대 안후이성(安徽省)의 담배·술·식품 유통 회사에서 경력을 쌓다가, 1990년대 중반 아이들 간식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아이템은 **막대 아이스크림(棒棒冰)**이었습니다.

막대 아이스크림 사업은 빠르게 성장했고, 빠르게 포화됐습니다. 만들기 쉽고 팔기 쉬운 사업은 경쟁자도 그만큼 많았습니다. 천셴바오가 다음 카드로 꺼낸 것은 해바라기씨 시장이었습니다. 당시 중국 해바라기씨 시장에는 이미 사얼 과즈(傻子瓜子) 같은 브랜드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후발 주자가 같은 방식으로 들어가면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답은 "같은 씨앗을 다르게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오늘날의 법인 챠챠식품(洽洽食品)은 선전거래소 자료 기준 2001년 8월 9일 공식 설립됐습니다. 그 안에는 1990년대부터 이어진 천셴바오의 사업 실험과 유통 네트워크 구축 과정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2장 — 볶지 않고 삶는다: 물이 만든 차별화
중국에서 해바라기씨 간식의 전통 방식은 **볶기(炒)**였습니다. 챠챠는 여기서 방향을 바꿔, 향신료와 한약재를 함께 끓여 맛을 입힌 뒤 건조하는 제조 방식을 내세웠습니다.

이 선택은 단순한 레시피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볶은 씨앗을 먹으면 손이 기름으로 더러워지는 문제가 있었는데, 삶아 만든 씨앗은 손이 덜 더러워졌습니다. 챠챠는 이 차이를 "손이 덜 기름진 과즈"라는 마케팅 언어로 전환했습니다. 작은 차이를 명확한 불편 해소(pain point)로 포장한 것입니다.
브랜드 이름 洽洽는 이 물(水) 방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중국어에서 洽洽는 경쾌한 반복형 음절로, 일부 브랜드 분석 글에서는 중남미 차차춤(恰恰舞)의 리듬감과 연결해 설명하기도 합니다. 다만 공식 회사 자료가 강조하는 것은 "즐거운 맛(快樂的味道)"이라는 정서와 발음의 친근함 쪽입니다. 어느 쪽이든, 발음의 경쾌함과 '물 수(水)' 변이 암시하는 조리 방식이 이름 하나에 함께 담겨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브랜드 네이밍 사례입니다.
3장 — 봉지 안의 문화 카드: 품격의 설계
챠챠가 처음 출시됐을 때, 봉지 안에는 씨앗만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매 봉지마다 **문화 카드(文化卡)**가 한 장씩 들어 있었습니다. 카드에는 고전 시·사(詩詞), 그리고 당대 인기 만화가의 코믹 컷 같은 것들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씨앗 간식의 기존 이미지는 저렴하고 길거리에서 껍데기를 뱉어가며 먹는 것이었습니다. 챠챠는 그 이미지 위에 문학과 유머를 얹었습니다. 소비자들은 처음에 챠챠라는 이름도 잘 몰랐다고 합니다. "봉지 안에 카드 들어 있는 과즈"라고 불렀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충분했습니다. 카드가 품격의 표식이 되었고, 사람들이 다음 카드를 보기 위해 다시 봉지를 뜯었습니다.
이후 챠챠는 포장 디자인에서도 이 전략을 이어갔습니다. 중국식 봉투(信封) 모양의 구형 포장, 붓글씨체 손글씨 폰트, 민속 문양 장식을 더하면서 "전통 있는 간식"의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값싼 스낵이 아니라, 나눠 먹을 만한 작은 선물처럼 보이도록 만든 것입니다.
4장 — 경로를 뒤집다: 농촌이 도시를 포위하다
챠챠가 처음 전국 유통을 시작했을 때, 대형 마트들은 입점을 거부했습니다. 신생 브랜드에게 프라임 진열대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천셴바오가 선택한 우회로는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한다(農村包圍城市)"**는 전략이었습니다. 대형 마트 대신, 그 주변의 작은 구멍가게와 지역 소매점을 먼저 공략했습니다. 소비자들이 동네 가게에서 챠챠를 사 먹고, 맛을 들이고, 자연스럽게 "왜 마트에는 없어요?"라고 묻게 만드는 전략이었습니다. 수요가 먼저 형성되자, 대형 마트들이 입점 문턱을 낮추기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략에서 또 하나의 핵심은 **경유지보다 경유인(사람)**에 대한 투자였습니다. 챠챠 씨앗 박스에는 소액의 현금과 추첨권이 동봉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물건을 넣어주면서 경유자(대리점·소매상)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경유상이 돈을 버는 구조를 먼저 만들고, 그 네트워크 위에 물량을 태웠습니다. 이 전략으로 해바라기씨 제품의 인지도가 빠르게 올라가면서, 설립 초기 매출이 수천만 위안에서 억 단위 규모로 성장했다는 사례가 여러 경영 기사에 자주 인용됩니다.
5장 — TV 광고: 타이밍의 예술
매출이 궤도에 오르자 챠챠가 한 일은, 빚을 내서 TV 광고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 챠챠는 **베이징TV의 예능 프로그램 《환러총동원(歡樂總動員)》**에 반년치 광고를 큰 금액을 들여 구입했습니다.
이 선택이 유효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환러총동원》은 당시 수억 명대 시청자를 보유한 인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주 시청자층은 청소년이었고, 그것이 챠챠의 핵심 타깃이었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 이름의 **"환러(歡樂, 즐거움)"**가 챠챠의 슬로건 **"快樂的味道(즐거운 맛)"**와 정서적으로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광고 투자 이후 챠챠의 매출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초기 챠챠 본사에는 물건을 받으러 온 대리점들이 문 앞에 줄을 섰고, 물건을 못 받은 대리점이 "줄 때까지 안 간다"며 버텼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6장 — 위기 관리의 교과서: 스테비아 파동
성장의 한가운데에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2000년대 초, 홍콩 식품 위생 당국이 챠챠 제품에서 홍콩 내 규제 대상인 감미료(스테비아, 甜菊糖) 성분이 검출됐다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언론 보도가 이어지며 챠챠에 대한 소비자 불안이 중국 전역으로 번졌고, 대리점들이 반품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챠챠는 정부·협회·언론과 긴밀히 공조해 대응했습니다. 중국 국가식품공업협회를 통해 "해당 성분은 중국 내륙에서 금지된 성분이 아니다"라는 공식 확인을 받아냈고, 문제가 된 제품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습니다. 홍콩·베이징의 주요 신문에 전면 광고를 냈고, 지방정부 명의의 기자회견도 열렸습니다.
위기는 오히려 브랜드 신뢰의 계기가 됐습니다. **"투명하게 응대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이 소비자 마음에 남았습니다. 위기 시 투명 대응 사례로 중국 경영 교육에서 지금도 인용되는 스토리입니다.
7장 — 2011년 상장, 그리고 씨앗을 넘어서
2011년 3월 2일, 챠챠는 **선전 증권거래소(深交所)**에 상장했습니다. 종목 코드 002557, 공모가 40위안, 상장 첫날 시가총액은 수십억 위안 규모로 출발했습니다.
상장 이후 챠챠는 해바라기씨 단일 품목에서 사업 범위를 넓혔습니다. 매일견과(每日堅果, Every Nut)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하루치 분량의 아몬드·호두·캐슈·건과일을 한 팩에 담은 형태로, 2015년 이후 중국에서 급성장한 건강 간식 카테고리의 흐름을 정확히 읽었습니다. 2022년 챠챠의 연간 매출은 약 68.8억 위안 수준에 달했습니다.
해외 시장도 확장됐습니다. 챠챠 씨앗의 해외 진출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으며, 해외 판매 수익도 상당한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동남아시아, 북미, 유럽의 중국계 슈퍼마켓을 거점으로 했던 챠챠가 이제는 한국 편의점 선반 위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8장 — 챠챠가 편의점 서가에 오는 방법
스니커즈가 "허기지면 네가 아니야"라는 감정 언어를 팔았고, 자유시간이 "내 시간은 내 것"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을 팔았다면, 챠챠는 **"같이 있음의 언어"**를 팝니다. 중국에서 해바라기씨를 나눠 먹는 행위는 "지금 당신과 함께 느긋하게 있고 싶다"는 신호라는 것을, 앞서 쫀쿠의 과즈 이야기에서 다뤘습니다.
챠챠는 그 문화 안에서 태어난 브랜드입니다. 봉지 안 문화 카드는 "이 씨앗이 단순한 군것질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였습니다. 한약재로 삶은 씨앗은 "이 안에 기술이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경쾌한 이름의 리듬은 "이 시간은 즐거워야 한다"는 철학이었습니다.
씨앗 하나, 이름 하나, 카드 한 장이 쌓여 브랜드가 되는 방식입니다.
마치며 — 조용한 씨앗의 긴 여정
해바라기씨가 어떻게 세계를 돌아다니는지를 알게 된 뒤 (우크라이나 흑토, 러시아의 쎄메츠키, 스페인의 피파스), 편의점 선반 위의 빨간 봉지를 다시 보게 됩니다.
안후이성 합페이시의 작은 사업에서 시작된 씨앗이, 문화 카드를 품고, TV를 타고, 농촌을 먼저 뚫고, 위기를 투명하게 넘기고, 경쾌한 이름처럼 리드미컬하게 흘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봉지를 뜯는 순간, 그 씨앗 하나하나 안에 꽤 긴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洽洽 — 快樂的味道. 챠챠 — 즐거운 맛.
브랜드 서가 by 이안 박 | brand-arch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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