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방 2편] Savoy — 오페라 극장의 수익금이 만든 호텔, 그리고 세자르 리츠가 떠난 날
[브랜드의 방 2편] Savoy — 오페라 극장의 수익금이 만든 호텔, 그리고 세자르 리츠가 떠난 날
prologue — 1편의 뒷이야기
브랜드의 방 1편에서 세자르 리츠를 소개했습니다. 스위스 산골 출신의 막내아들이 파리 방돔 광장에 호텔을 열고, 자신의 이름을 형용사로 만든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빠진 챕터가 있었습니다. 리츠가 파리에 자기 호텔을 열기 전, 런던에서 자리를 떠나야 했던 날의 이야기입니다.

1898년 3월, 런던 스트랜드(Strand) 가에 있는 사보이호텔(The Savoy)에서 세자르 리츠와 오귀스트 에스코피에가 각각 호텔 측과의 공직 관계를 정리하게 됩니다. 공식 기록에는 두 사람이 "중대한 과실과 직무 위반(gross negligence and breach of duty)"을 이유로 해고되거나 계약이 종료된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현대 럭셔리 호텔 역사를 바꿉니다.
오늘은 그 호텔의 이야기를 합니다.
1부 — Savoy라는 이름: 전나무 숲에서 알프스 공국으로
Savoy의 어원을 따라가면 라틴어 Sapaudia에 닿습니다. 로마 시대 알프스 남서쪽 지역을 가리키던 이름으로, 켈트어 계통의 단어 sapin(전나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Sapaudia — 전나무가 우거진 땅. 알프스 기슭의 침엽수림 지대라는 지형적 묘사가 이름이 된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11세기 사보이아 공국(Duchy of Savoy)이 성립됩니다. 알프스를 사이에 두고 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의 경계에 걸친 이 공국은 수백 년간 유럽 왕실 정략결혼의 중심지였습니다. 사보이아 가문의 공녀들이 영국·프랑스·스페인 왕실로 시집가며 Savoy라는 이름이 유럽 귀족 사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런던과의 인연은 12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보이아 공국의 피에르 1세(Count Peter of Savoy)가 헨리 3세의 초청으로 영국에 왔고, 템스 강변에 사보이 궁전(Savoy Palace)을 지었습니다. 궁전은 1381년 농민 반란(Peasants' Revolt) 때 불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사보이 예배당, 사보이 병원이 차례로 들어섰고, Savoy라는 이름은 그 땅에 800년 가까이 남았습니다. 1889년 그 자리 인근에 호텔이 들어섰을 때, 이름은 자연스럽게 The Savoy가 됐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Sapaudia(켈트어 전나무 숲) → 사보이아 공국 → 사보이 궁전(1240) → The Savoy Hotel(1889).
지명이 공국이 되고, 공국이 궁전이 되고, 궁전이 호텔이 된 650년 가까운 여행입니다.
2부 — 리처드 도일리 카르트: 오페라 수익금으로 호텔을 짓다
1889년 사보이 호텔을 세운 사람은 호텔리어가 아니었습니다. 리처드 도일리 카르트(Richard D'Oyly Carte, 1844~1901) — 빅토리아 시대 런던 최고의 공연 기획자였습니다.

그는 1875년부터 작곡가 아서 설리번(Arthur Sullivan)과 극작가 W.S. 길버트(W.S. Gilbert)의 콤비를 기획·제작하며 런던 공연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길버트·설리번의 코믹 오페라 — HMS 피나포어, 펜잔스의 해적, 미카도 — 는 영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도일리 카르트는 이 공연 수익금으로 1881년 사보이 극장(Savoy Theatre)을 지었는데, 이것이 에디슨의 백열전구가 실용화된 직후 전기 조명을 전면 도입한 초기 공공 건물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국 투어를 다니며 뉴욕·시카고의 호텔들을 경험한 도일리 카르트는 깨닫습니다. "런던에는 이런 호텔이 없다." 당시 런던의 고급 숙소는 개인 클럽이나 하숙집 수준이었고, 객실마다 욕실이 딸린 호텔은 흔치 않았습니다.
그는 사보이 극장 바로 옆 부지에 호텔을 짓기로 합니다. 재원은 길버트·설리번 오페라의 수익금이었습니다. 오페라가 호텔을 낳은 것입니다.
1889년 개관한 사보이 호텔은 당시 런던에서 전기 조명(객실 전체), 전동 엘리베이터(ascending rooms), 객실 전용 욕실, 24시간 냉온수 공급 등을 동시에 도입한 선구자 호텔 중 하나로 꼽힙니다. 당시 런던 사람들에게 이것은 공상과학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일리 카르트는 이 혁신적인 호텔을 운영할 사람을 찾습니다. 유럽 최고의 호텔리어. 그 이름이 세자르 리츠였습니다.
3부 — 리츠와 에스코피에: 사보이의 황금기, 그리고 이별
리츠가 사보이에 총지배인으로 부임하면서 데려온 인물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프로방스 출신의 요리사 오귀스트 에스코피에(Auguste Escoffier, 1846~1935)였습니다.

에스코피에는 단순한 요리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보이의 주방에서 현대 레스토랑 주방의 기초를 설계했습니다. 군대의 조직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주방 여단 시스템(Kitchen Brigade System)을 창안했습니다. 총주방장(Executive Chef) 아래 부문별 책임자(소스 담당, 육류 담당, 디저트 담당 등)를 두고, 각 파트가 병렬로 움직이는 분업 구조. 오늘날 전 세계 많은 전문 레스토랑 주방이 이 구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보이 주방에서 피치 멜바(Pêche Melba)도 탄생시켰습니다. 1890년대 초중반, 호주 출신 오페라 소프라노 넬리 멜바(Nellie Melba)가 사보이에 머물고 있었고, 에스코피에는 그녀를 위해 복숭아·바닐라 아이스크림·라즈베리 소스를 조합한 디저트를 만들었습니다. 음식에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에포님 요리의 고전적 사례입니다. 멜바 토스트도 그녀의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리츠와 에스코피에의 조합 아래 사보이는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중심이 됐습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연인 앨프리드 더글러스(Alfred Douglas, 보시 경)와 여기 자주 들렀고, 클로드 모네는 1899년부터 1901년까지 세 차례 장기 투숙하며 6층 객실 창문으로 템스 강을 바라보며 연작을 그렸습니다 — 훗날 Views of the Thames 시리즈로 정리된, 수백 점 가까운 연작 중 일부가 이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마크 트웨인, 찰리 채플린, 윈스턴 처칠 등이 사보이를 자주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사보이는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1898년 3월, 균열이 왔습니다.
리츠와 에스코피에는 "중대한 과실과 직무 위반(gross negligence and breach of duty)"을 이유로 사보이와의 공직 관계를 정리하게 됩니다. 공식적으로는 호텔 물자 관련 회계 문제 — 와인과 식재료 처리를 둘러싼 책임 소재가 배경이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지금도 논란입니다. 리츠가 무고했다는 설, 에스코피에의 거래 관행이 문제였다는 설, 도일리 카르트의 후계자들과의 갈등이 원인이었다는 설이 교차합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사보이를 떠난 리츠는 그해 투자자들을 모아 파리 방돔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1898년, 호텔 리츠 파리가 문을 열었습니다. 사보이를 떠난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건 호텔을 열어 형용사를 만든 것입니다.
사보이가 리츠를 키웠고, 리츠가 사보이를 떠나며 더 커졌습니다.
4부 — Service: 노예의 언어가 환대의 언어가 된 방법
사보이가 정의한 핵심 개념이 있습니다. 서비스(Service)입니다.

Service의 어원은 라틴어 servitium — 노예 상태, 예속입니다. servus(노예)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어원적으로 서비스는 노예가 주인을 위해 하는 행위였습니다.
계보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servus(노예) → servitium(노예 상태) → 고대 프랑스어 servise → Service.
그런데 사보이와 리츠·에스코피에 콤비가 이 단어에 완전히 다른 의미를 입혔습니다. 리츠의 철학은 이것이었습니다. "고객은 항상 옳다(The customer is always right)." — 이 문장이 리츠에게서 나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에스코피에는 주방을 군대처럼 조직해 정확하고 우아하게 제공하는 것 자체를 예술로 만들었습니다.
노예의 언어였던 service가 전문성과 자부심의 언어로 전환된 것입니다. 이 전환이 일어난 무대가 사보이였습니다. 오늘날 호텔 업계가 서비스를 하인이 하는 일이 아닌 전문가의 기예로 정의하는 문화는 1889년 사보이에서 자라났습니다.
노동의 언어가 존엄의 언어로 바뀌어 온 흐름은, 오십보가 은방울꽃 한 송이와 8시간의 기적 — 노동절 140년의 이야기에서 다룬 노동절의 역사와도 나란히 놓고 볼 만합니다. 하나는 노동의 시간을, 하나는 노동의 언어를 되찾은 이야기입니다.
5부 — 사보이 코트: 영국에서 오른쪽으로 달리는 도로
사보이 호텔에는 건물만큼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호텔 입구로 이어지는 사보이 코트(Savoy Court)는 영국에서 오른쪽 통행이 허용된 대표적인 도로입니다. 영국 대부분의 도로에서 차는 왼쪽으로 다니지만, 이곳만 예외적으로 오른쪽 통행이 허용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도일리 카르트는 극장과 호텔을 오가는 마차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이기를 원했습니다. 사보이 코트의 구조상 오른쪽 통행이 마차 승하차에 더 편리했고, 이것이 1902년 의회 특별법으로 공식화됐습니다. 오페라 관객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120년 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브랜드의 방 시리즈 프롤로그에서 다뤘듯, 호텔은 hospes(손님)와 hostis(적)가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사보이 코트의 이 작은 역주행은 그 역설의 물리적 표현처럼 보입니다. 손님을 위해 법을 바꾸는 곳. 그것이 럭셔리 호텔의 본질입니다.
6부 — 사보이라는 이름이 세계로 흘러간 길, 그리고 서울과 마산
Savoy라는 이름은 런던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한국에도 이 이름이 있습니다. 1957년 개관한 명동 사보이호텔은 한국인 민간자본으로 세워진 초기 도심 호텔 중 하나로 꼽힙니다.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서울 한복판에, 유럽 럭셔리 호텔의 이름을 빌려온 이 호텔은 이후 오랜 세월 명동의 랜드마크로 남았습니다. 그 이름의 연장선에서 경남 마산에도 사보이라는 이름을 단 호텔(현재의 베니키아호텔 사보이)이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런던에서 시작된 이름 하나가, 왕실의 결혼 동맹과 오페라 극장을 거쳐, 지구 반대편 한국의 도심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다시 쓰인 셈입니다.
미국·유럽·아시아 여러 도시에도 Savoy 또는 The Savoy라는 이름을 쓰는 호텔들이 존재합니다. 그중 일부는 런던 사보이의 명성을 빌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부는 이름만 같을 뿐 독립적으로 세워진 호텔입니다. 사보이아 공국의 지명이 어쩌다 이렇게 흔해진 이름이 되었는지 정확히 계보를 추적하기는 어렵지만, 하나의 이름이 왕실의 언어에서 도시의 언어로, 다시 세계 각지의 상업적 언어로 번역되어 온 과정 자체가 브랜드 헤리티지의 한 표본입니다.
epilogue — 사보이가 없었다면
사보이가 없었다면, 리츠 파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에스코피에의 주방 여단도, 피치 멜바도, 모네의 템스 연작도 다른 장소에서 탄생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 럭셔리 호텔이 정의하는 서비스의 기준이 달랐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전나무 숲에서 시작된 이름이, 알프스 공국을 거쳐, 런던 템스 강변에 호텔로 내려앉고, 서울 명동과 마산까지 흘러가며, 노예의 언어를 환대의 언어로 바꿨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같은 시대의 다른 대륙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호텔 제국을 만든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텍사스 소도시에서 은행 대신 호텔을 산 남자, 콘래드 힐튼입니다.
Hospes hostique idem. 손님과 적은 같은 것이다. — 라틴 속담으로 전해지는 문구이며, 사보이는 그 역설을 가장 우아하게 풀어낸 장소였습니다.
소유하지 않아도, 오페라 극장 하나가 호텔의 서비스 철학을 바꾼 이야기를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럭셔리가 있습니다.
다음 글 예고
[브랜드의 방 3편] Hilton — 텍사스 소도시 호텔에서 세계를 예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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