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로 피아나 6대 가업의 기록 - 몽골 캐시미어 독점 계약서의 진실
조용한 럭셔리의 정점에서 발견한 'Esse quam videri’의 철학
안녕하세요, 브랜드 헤리티지 연구자 이안 박입니다.
브랜드 서재의 세 번째 이야기로, 오늘은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의 정점에 서 있는 브랜드, **로로 피아나(Loro Piana)**의 아카이브를 열어보려 합니다.
에르메스가 말 안장에서 버킨백까지의 여정을 보여줬고, 샤넬이 No.5로 추상적 향수의 혁명을 일으켰다면, 로로 피아나는 **‘보이지 않는 것의 힘’**을 증명한 브랜드입니다. 로고가 거의 보이지 않는 이 브랜드는, 역설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옷을 만듭니다.
오늘은 1812년 이탈리아 알프스 산자락에서 시작된 이 가문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들이 몽골 초원과 페루 안데스 산맥까지 뻗어나간 200년의 여정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812년, 트리베로 계곡의 양모 상인들
로로 피아나의 뿌리는 1812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의 트리베로 계곡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로로 피아나 가문은 이미 이 지역에서 양모 거래상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트리베로는 섬유 산업에 완벽한 조건을 갖춘 곳이었습니다. 알프스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청정한 물과,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기후. 차가운 물은 섬유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불순물을 깨끗이 씻어냈고, 건조한 겨울 공기는 천연 건조에 이상적이었습니다.

본격적인 브랜드의 시작은 1924년, **피에트로 로로 피아나(Pietro Loro Piana)**가 쿠아로나에 공식적으로 회사를 설립하면서부터입니다. 100년 넘게 가족 사업으로 이어오던 양모 거래를 현대적 기업으로 전환한 것이죠.
브랜드 이름의 철학:
'Loro Piana’는 이탈리아어로 **‘로로 가족의 평원(Loro family’s plain)’**을 뜻합니다. 'Piana’는 평야를 의미하는데, 이는 양들이 풀을 뜯는 목초지, 즉 모든 섬유의 출발점을 상징합니다. 화려한 궁전이나 공방이 아닌 평범한 '평원’을 이름에 담은 것. 이것이 바로 로로 피아나 철학의 출발점입니다.
1970년대, 세계의 끝을 향한 섬유 탐험
로로 피아나를 진짜 전설로 만든 것은 4대 경영자인 **세르지오(Sergio)**와 피에르 루이지(Pier Luigi) 형제였습니다.
1970년대, 두 형제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탈리아 알프스를 벗어나 세계의 끝까지 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문명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들이었습니다.
몽골 고비사막 - 흰 염소의 목덜미:
몽골 고비사막 인근에는 **히르커스 염소(Hircus goat)**가 서식합니다. 이 염소의 목덜미 아래 15-19마이크론 굵기의 솜털, 이것이 바로 최고급 캐시미어의 원료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베이비 캐시미어’**였습니다. 생후 12개월이 되기 전 새끼 염소에서 단 한 번만 얻을 수 있는 이 섬유는 성체 염소보다 훨씬 가볍고 부드럽습니다. 세르지오 형제는 몽골 유목민들과 직접 계약을 맺고, 매년 봄 털을 깎는 시기에 맞춰 몽골을 방문했습니다.
페루 안데스 산맥 - 신들의 섬유:

더 극적인 여정은 페루 안데스 산맥이었습니다. 해발 4,000미터 고원에 서식하는 **비쿠냐(Vicuña)**는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섬유 동물입니다. 12-13마이크론, 인간 머리카락의 7분의 1 굵기인 이 털은 잉카 제국 시절부터 **‘신들의 섬유’**로 불렸습니다.
비쿠냐 보호 프로젝트 - 럭셔리와 지속가능성의 만남
문제는 비쿠냐가 멸종 위기종이었다는 점입니다. 20세기 들어 무분별한 밀렵으로 1960년대에는 개체 수가 6,000마리까지 급감했습니다.
1994년, 로로 피아나는 페루 정부 및 지역 공동체와 역사적인 협약을 맺었습니다. **‘비쿠냐 보호 및 지속가능한 이용 프로젝트’**였습니다.
차쿠(Chakku) 의식:
매년 5월, 페루 고원 지대에서는 **‘차쿠(Chakku)’**라는 전통 의식이 열립니다. 수백 명의 지역 주민들이 손을 잡고 넓은 원을 만들어 비쿠냐를 몰아 모읍니다. 동물들이 겁먹지 않도록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다가가죠.
포획된 비쿠냐는 조심스럽게 털을 깎고 즉시 풀어줍니다. 한 마리당 겨우 200-250그램의 털을 얻을 수 있습니다. 코트 한 벌을 만들려면 25-30마리의 비쿠냐가 필요합니다.

프로젝트의 성과:
- 비쿠냐를 죽이지 않고 살려서 털만 깎는다
- 2년에 한 번만 털을 깎아 충분한 회복 시간을 준다
- 수익의 일부를 지역 공동체에 환원한다
- 밀렵 감시와 서식지 보호에 투자한다
이 프로젝트 덕분에 비쿠냐 개체 수는 현재 50만 마리 이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로로 피아나는 럭셔리 브랜드가 어떻게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것입니다.
침묵의 미학 - “Esse quam videri”
로로 피아나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로고리스(logo-less)’ 철학입니다.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들이 로고를 크게 새기는 동안, 로로 피아나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의 제품에는 눈에 띄는 로고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원단의 질감과 색감 자체가 브랜드를 말하게 했습니다.
이 철학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라틴어 문구가 있습니다:
“Esse quam videri”
“보이는 것보다 존재하는 것(본질)이 더 중요하다”
- Esse: 존재하다, 본질
- quam: ~보다
- videri: 보여지다, 겉모습
고대 로마 철학자들이 진정한 덕목을 설명할 때 사용한 이 격언은, 겉으로 화려하게 치장하여 남들에게 ‘보여지는(videri)’ 삶보다 내면의 가치와 본질이 확고하게 ‘존재하는(esse)’ 삶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로로 피아나는 정확히 이 문장을 옷으로 구현했습니다. 겉모습(로고)은 침묵하지만, 그 안의 본질(소재와 품질)은 웅변하고 있습니다.
2013년, LVMH 인수와 정체성 유지의 줄타기
2013년, 로로 피아나에게 중대한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세계 최대 럭셔리 그룹 LVMH가 80% 지분을 **20억 유로(약 2조 8천억 원)**에 인수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습니다. 조용한 가족 기업이 거대 자본에 흡수되면 정체성을 잃지 않을까? 하지만 로로 피아나 가문은 영리하게 협상했습니다.
인수 조건:
- 세르지오와 피에르 루이지는 경영에 계속 참여
- 브랜드 철학과 품질 기준은 절대 타협하지 않음
- 몽골, 페루 등 원료 수급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
- 과도한 확장보다 품질 중심 성장
실제로 인수 이후에도 로로 피아나는 본질을 지켰습니다. 매장 수를 급격히 늘리지 않았고, 할인 행사도 하지 않았으며, SNS 마케팅도 최소화했습니다.
'Succession’과 조용한 럭셔리의 부활

2020년대 들어 로로 피아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주목받았습니다. HBO 드라마 **‘Succession(석세션)’**이었습니다.
억만장자 가문의 권력 다툼을 그린 이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 로로 피아나를 입고 있었습니다. 로고가 없는 캐시미어 니트, 절제된 톤의 코트, 심플한 로퍼. 이것이 바로 **‘진짜 부자들의 옷차림’**이라는 메시지였죠.
이후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트렌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로로 피아나는 그 중심에 섰습니다. 젊은 세대들도 "Old Money Aesthetic(구세대 부자 스타일)"을 추구하며 로로 피아나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문학적 성찰 - 보이지 않는 것의 힘
로로 피아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진짜 가치는 어떻게 증명되는가?”
현대 사회는 '보여주기’의 시대입니다. SNS에 올리고, 로고를 자랑하고, 숫자로 증명하려 합니다. 하지만 로로 피아나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Substantia prae forma”
“형식보다 본질을”
- Substantia: 실체, 본질
- prae: ~보다 앞에, 우선하여
- forma: 형태, 겉모습
로로 피아나의 옷을 실제로 만져본 사람들은 압니다. 이 브랜드는 언제나 **Substantia(원단, 촉감, 착용감)**를 **Forma(겉모양, 로고, 과시)**보다 앞에 두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또 하나의 라틴어 격언:
“Elegantia sine ostentatio”
“과시 없는 우아함”
- Elegantia: 우아함, 세련됨, 품격
- sine: ~없이
- ostentatio: 과시, 허세, 자랑
로마 공화정 시대 키케로가 진정한 귀족의 덕목을 설명하며 사용한 이 표현처럼, 진짜 품격은 드러내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200년을 이어온 한 가지 질문
로로 피아나 가문은 200년 넘게 같은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섬유 본연의 아름다움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 몽골 초원 4,000km를 여행했고
- 페루 안데스 산맥 해발 4,000m를 올랐으며
- 멸종 위기 동물을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 로고를 지우고 원단으로만 말하기로 했습니다
에르메스가 '빈 마차’로 고객의 주체성을 존중했다면, 샤넬이 '등 맞댄 C’로 과시를 거부했다면, 로로 피아나는 **‘로고 없는 완벽함’**으로 진정한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아카이브를 닫으며
오늘 우리는 로로 피아나라는 한 브랜드 속에서, 1812년 이탈리아 알프스 산자락의 작은 마을, 몽골 초원의 흰 염소, 페루 안데스의 비쿠냐, 그리고 'Esse quam videri’라는 로마 철학까지 함께 읽었습니다.
200년 넘게 6대를 이어온 이 가문은, 결국 한 가지를 증명했습니다:
진짜 럭셔리는 조용합니다.
로고를 크게 새기지 않아도, 광고를 많이 하지 않아도, SNS에 매일 올리지 않아도, 진짜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알아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다음 번 백화점 명품관을 지나칠 때, 로고가 가장 작거나 거의 보이지 않는 브랜드를 한번 찾아보세요. 그것이 바로 로로 피아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옷을 만지는 순간, 당신은 왜 이 브랜드가 200년을 살아남았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Esse quam videri” - 보이는 것보다 본질이 되라.
이것이 로로 피아나가 세상에 전하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다음 브랜드 서재에서는 롤렉스 오이스터 케이스 특허 문서 분석을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1926년 혁신의 순간, 기술이 어떻게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되었는지를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 Loro Piana Family Archives
- “The Story of Vicuña” - Loro Piana Foundation
- LVMH Annual Reports
- “Quiet Luxury: The New Status Symbol” - Financial Times
브랜드 서재 by 이안 박
“소유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럭셔리가 있습니다.”
“200년을 이어온 가문의 질문: 어떻게 하면 섬유 본연의 아름다움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