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서가

[편의점 서가] 오레오(Oreo) — 원조를 이기고, 그 사실조차 지운 카피캣

이안 박(Ian Park)의 브랜드 서재 2026. 8. 11. 17:52
반응형

 

[편의점 서가] 오레오(Oreo) — 원조를 이기고, 그 사실조차 지운 카피캣

 


안녕하세요, 이안 박입니다. 

 

편의점 과자 코너에서 검은 원반 두 장 사이에 흰 크림이 낀 그 과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Oreo.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쿠키 브랜드입니다. 지금까지 5,000억 개 넘게 팔렸고, 10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유통됩니다.

 

그런데 이 압도적인 원조 이미지 뒤에는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오레오는 원조가 아니었습니다. 오레오보다 4년 먼저 태어난 진짜 원조가 따로 있었고, 오레오는 그 원조를 베껴서 만든 카피캣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이 그 반대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다룰 이야기입니다.


1장 — 1908년, 진짜 원조 하이드록스

이야기는 오레오가 아니라 **하이드록스(Hydrox)**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1908년, 진짜 원조의 탄생 — 하이드록스(Hydrox)

1908년, 제과회사 루스-와일스(Loose-Wiles, 훗날 선샤인 비스킷Sunshine Biscuits)가 검은 초콜릿 웨하스 두 장 사이에 바닐라 크림을 채운 샌드위치 쿠키를 출시했습니다. 이름은 물 분자를 이루는 두 원소, 수소(Hydrogen)와 산소(Oxygen)에서 따온 Hydrox. "순수함과 좋은 품질"을 상징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쿠키 표면에는 월계관 문양과 일곱 장짜리 꽃잎 장식, 스크롤 무늬 테두리까지 새겨져 있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공들인 디자인이었습니다.

 

하이드록스는 출시 즉시 인기를 끌었습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도 함께 팔릴 정도였습니다.


2장 — 1912년, 나비스코의 반격

경쟁사였던 내셔널 비스킷 컴퍼니(National Biscuit Company, 이후 나비스코Nabisco로 널리 불림)는 이 인기를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하이드록스가 시장을 장악한 지 4년 만인 1912년, 나비스코는 거의 똑같은 구조의 쿠키를 만들어 출시했습니다. 이름은 Oreo Biscuit.

1912년, 카피캣의 도전 — 오레오(Oreo)의 등장

이름의 유래는 지금도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나비스코는 한 번도 정확한 답을 확인해준 적이 없고, 그 자리를 여러 추측이 채우고 있습니다. 포장이 원래 금색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어로 '금'을 뜻하는 or에서 왔다는 설, 초기 시제품이 산 모양으로 봉긋했기 때문에 그리스어로 '산'을 뜻하는 단어에서 왔다는 설, 그리고 음식 칼럼니스트 스텔라 파크스(Stella Parks)가 제기한 월계수 속(屬)을 뜻하는 그리스어 조합에서 왔다는 설까지 다양합니다. 흥미로운 건, 초기 오레오의 문양에도 하이드록스처럼 월계관 무늬가 들어가 있었고, 당시 나비스코의 다른 쿠키들(Avena, Lotus, Helicon 등)도 식물학적 이름을 즐겨 썼다는 점입니다. 확실한 건 이름의 기원이 아니라 이 쿠키가 하이드록스를 겨냥해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Hydrox (1908, 원조) → Oreo Biscuit (1912, 카피캣)

 

오레오라는 이름 자체도 1912년 이후 몇 차례 바뀌었습니다. 1921년 "Oreo Sandwich", 1948년 "Oreo Crème Sandwich", 그리고 1974년부터 지금까지 쓰는 "Oreo Chocolate Sandwich Cookie"까지. 이름은 변했지만, "하이드록스를 이기겠다"는 처음의 목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3장 — 어떻게 카피캣이 원조를 이겼나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이 벌어집니다. 초기 오레오는 하이드록스를 곧바로 밀어내지 못했습니다. 하이드록스가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고, 오레오는 그저 "비슷하게 생긴 후발주자"였을 뿐입니다.

 

전세가 뒤집힌 결정적 계기 중 하나는 레시피 개선이었습니다. 나비스코에서 오래 일한 식품과학자 새뮤얼 포르첼로(Samuel J. Porcello)가 오레오의 흰 크림 필링을 다시 설계했고, 이 크림이 하이드록스보다 더 부드럽고 달콤하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나비스코의 압도적인 마케팅 예산과 유통망이 더해졌습니다. 하이드록스가 코셔(kosher, 유대교 정결 음식) 인증을 유지하며 특정 소비자층에서 꾸준한 지지를 받은 반면, 오레오는 훨씬 폭넓은 대중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전세 역전의 서막 — 더 달콤한 크림의 비밀

그 결과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오레오는 하이드록스를 완전히 추월했고, 그 격차가 너무 벌어진 나머지 대중의 인식 자체가 뒤집혔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많은 사람이 "하이드록스가 오레오를 베낀 짝퉁"이라고 잘못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는 정반대인데도 말입니다. 1999년, 하이드록스는 결국 생산이 중단됐습니다. 이후 노스탤지어 열풍을 타고 브랜드가 부활해 재출시되기도 했지만, 한때 시장을 지배했던 원조의 위상은 되찾지 못했습니다.

 

원조가 카피캣에게 이름값까지 빼앗긴 사례입니다. 먼저 태어났다는 사실보다, 누가 더 크게 이름을 알렸는가가 시장에서는 훨씬 중요했습니다.


4장 — 오레오가 중국에서 배운 것

오레오의 역사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이 압도적인 브랜드가 해외 진출 초기에는 오히려 크게 실패했다는 사실입니다.

 

1996년 오레오는 중국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미국에서 통했던 그대로의 레시피와 마케팅 방식을 그대로 들고 갔습니다. 결과는 부진했습니다. 중국 소비자들에게 오레오는 지나치게 달았고, 크기도 부담스러웠습니다. 게다가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익숙한 "비틀어 열고(twist), 크림을 핥고(lick), 우유에 적셔(dunk) 먹는" 의식 같은 소비 습관도 중국에서는 그냥 "이상한 미국식 습관"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대륙을 넘은 실패와 새로운 발명 — 중국의 오레오 웨하스 스틱

크래프트(당시 오레오의 모기업)는 방향을 바꿨습니다. 2005~2006년경, 설탕을 줄이고 크기를 작게 만든 중국 전용 오레오를 새로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에서 인기 있던 웨하스(wafer) 형태에 오레오의 맛을 결합한 완전히 새로운 제품, **오레오 웨하스 스틱(Oreo wafer stick)**을 출시했습니다. 이 제품은 2006년 중국에서 크래프트의 단일 품목 중 최대 매출을 기록했고, 오레오를 중국 최고 판매 비스킷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이후 이 웨하스 스틱은 역으로 캐나다, 한국, 호주 등지에도 수출됐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난 파생 제품이 오히려 본토로 역수출된 셈입니다.

역수출된 성공 — 오레오 웨하스 스틱의 미국 상륙

 

같은 전략은 인도에서도 반복됐습니다. 인도 소비자들은 미국식 오레오를 '너무 쓰다'고 느꼈고, 크래프트는 다시 현지 입맛에 맞춰 레시피를 조정했습니다. 오레오는 이 과정에서 그린티, 오렌지, 망고맛 등 지역 한정판을 잇달아 내놓으며 "미국 과자"가 아니라 "그 나라의 과자"로 스스로를 재설계해나갔습니다.


5장 — 다이제스티브와 오레오, 두 개의 대서양 이야기

편의점 서가에서 다뤘던 맥비티 다이제스티브와 오레오를 나란히 놓으면,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나라의 서로 다른 브랜드 감각이 드러납니다.

 

다이제스티브는 "약"이라는 정직한 출발점에서 시작해, 진짜 효능이 없다는 게 밝혀진 뒤에도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전통과 신뢰"의 이미지로 살아남았습니다. 반면 오레오는 처음부터 경쟁자를 노골적으로 겨냥한 카피캣으로 태어났고, 그 사실을 스스로 밝히지 않은 채 압도적인 마케팅으로 원조의 기억 자체를 지워버렸습니다. 하나는 "정직한 기원을 간직한 브랜드"이고, 다른 하나는 "기원을 이겨서 지운 브랜드"입니다.

 

그리고 해외 진출 방식도 갈립니다. 다이제스티브는 한국(라이선스 후 독립), 일본(라이선스 유지 및 현지화)처럼 그 나라 기업에게 브랜드나 기술을 맡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오레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비스코-크래프트-몬델리즈로 이어지는 하나의 본사가 직접 세계 각지의 레시피를 다시 설계하며 지배력을 유지했습니다. 두 회사 모두 "이름은 지키되 실체는 현지에 맞춘다"는 원칙은 같았지만, 그 실체를 누가 통제하느냐는 전혀 달랐습니다.

 

한국의 대표 과자 초코파이도 이와 비슷한 "정(情)"의 브랜드 서사를 갖고 있는데, 오리온이 이 작은 과자 하나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는 편의점 서가 — 초코파이의 과학과 정(情) 편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십보의 시선에서 보면, 이런 저가 기호식품이 불황기에 오히려 더 잘 팔리는 현상을 립스틱 효과 — 불황일수록 편의점 브라우니가 잘 팔리는 이유에서 경제학적으로 풀어낸 적이 있습니다. 오레오 역시 대표적인 '저렴한 사치'로 분류되는 상품이라,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 지점이 많습니다.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오늘 편의점에서 오레오 한 봉지를 집어든다면, 그 포장 뒤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승자의 역사 — 오레오 제국의 현재와 미래

 

1908년 하이드록스가 먼저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 1912년 나비스코가 그것을 베껴 만든 오레오가 결국 원조 자리를 빼앗았다는 반전. 1999년 진짜 원조가 시장에서 사라졌다는 아이러니. 그리고 1996년 중국에서 크게 실패한 뒤, 웨하스 스틱이라는 전혀 다른 발명품으로 오히려 세계로 역수출됐다는 사실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레오가 원조라고 믿습니다. 그 믿음 자체가, 브랜드가 역사를 어떻게 다시 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브랜드 서재 by 이안 박 | brand-archive.com "먼저 태어난 것과, 먼저 기억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태그
#오레오 #Oreo #하이드록스 #Hydrox #나비스코 #Nabisco #크래프트 #Kraft #몬델리즈 #카피캣 #원조논쟁 #편의점서가 #이안박 #브랜드아카이브 #쿠키역사 #중국시장현지화 #오레오웨하스스틱 #초코파이 #립스틱효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