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서가

[편의점 서가] 빙그레 꽃게랑 — 집게발이 연 스낵의 짠맛 미학

이안 박(Ian Park)의 브랜드 서재 2026. 5. 1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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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브랜드 헤리티지 연구자 이안 박입니다.

 

오늘은 편의점 진열대 앞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꽃게 일러스트가 그려진 봉지. 양 집게발을 번쩍 들고 있는 그 친숙한 모양. 그리고 1986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리를 비운 적 없는 이름, 꽃게랑.

지난 편에서 다룬 농심 새우깡이 반세기 넘게 바다의 맛을 봉지에 담아왔다면, 꽃게랑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새우깡이 한국 스낵 역사의 정통 왕좌를 지켜왔다면, 꽃게랑은 러시아까지 건너가 '끄랍칩스'라는 이름으로 현지 국민과자가 되는 예상치 못한 여정을 걸었습니다.

 

왜 꽃게랑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편의점 과자 코너에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요. 오늘은 집게발 하나에 담긴 40년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967년, 아이스크림 공장에서 시작된 회사

꽃게랑을 이해하려면 먼저 빙그레라는 회사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빙그레의 뿌리는 1967년 9월 13일 홍순지 창업주가 설립한 대일양행입니다. 창업주는 1960년대 베트남에서 미군에게 아이스크림을 군납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를 세웠습니다. 이후 대일유업으로 사명을 바꾸고 미국 퍼모스트(Foremost)사와 기술제휴를 맺으며 유제품 사업을 본격화했습니다. 그러나 경영난으로 1973년 한국화약그룹(현 한화)에 인수됩니다.

 

이 시기, 회사는 안으로부터 달라집니다. 1974년, 단지 모양의 바나나맛 우유와 고급 아이스크림 투게더가 나란히 탄생했습니다. 2024년, 두 제품이 나란히 50주년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이 시기의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1983년에는 요플레가 등장했고, 회사는 유제품 전문 기업으로 자리를 굳혀갑니다.

 

1982년, 회사는 지금의 이름 빙그레로 사명을 바꿉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 말기 국어순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탄생한 순우리말 사명으로, '빙그레'는 은근히 미소 짓는 모양을 뜻합니다.

 

그리고 1986년, 꽃게랑이 출시됩니다. 같은 해 빙그레는 경기도 광주공장을 준공했고,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가 창단됐습니다. 브랜드가 비로소 몸집을 갖춰가는 시기였습니다.

 

빙그레는 1992년 한화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1998년 1월 공정거래법상 완전 계열 분리를 마칩니다. 창업주 가문과 한화 창업주 가문 사이의 상속 분쟁이 배경이었습니다. 꽃게랑은 그 독립의 시간을 처음부터 함께한 제품 중 하나입니다.


집게발의 설계 — 형태가 브랜드가 된다는 것

1980년대 한국 과자 시장은 농심 새우깡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새우 모양, 새우 맛이라는 공식이 시장을 장악한 시절, 빙그레는 전혀 다른 방향을 선택합니다. 꽃게를 재현한 모양, 소금으로 구운 담백한 맛. 이 조합이 꽃게랑만의 포지션을 만들었습니다.

꽃게랑의 집게발 모양은 모방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틀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방식으로, 에르메스의 버킨백 실루엣처럼 '모양만 봐도 아는' 정체성을 확보했습니다. 봉지 위의 꽃게 일러스트와 실제 과자 조각이 같은 형태를 공유한다는 것. 소비자가 봉지를 보고 기대한 것을 손 안에서 그대로 만지게 된다는 것. 이 일관성이 꽃게랑을 단순한 게맛 스낵이 아니라 하나의 캐릭터로 기억되게 만든 설계 철학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꽃게랑의 집게발이 종종 한쪽씩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결함처럼 보이지만, 소비자들은 오히려 온전한 집게발을 찾는 것을 소소한 즐거움으로 삼게 됐습니다. 단점이 애착으로 전환되는 역설. 이것이 장수 브랜드가 가진 독특한 헤리티지 중 하나입니다.

짠맛에도 설계가 있습니다. 꽃게랑의 기본 맛은 소금으로 구운 담백함입니다. 화려한 시즈닝을 덧대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40년 동안 '담백함'이라는 기준을 지켜온 것, 그것이 꽃게랑의 짠맛 미학입니다.


40년을 살아남은 브랜드의 세 가지 힘

이안 박의 브랜드 서재 시선으로 꽃게랑의 생존 비결을 세 가지로 읽어봅니다.

 

첫째, 형태의 독창성입니다. 앞서 살펴봤듯, 꽃게 모양이라는 틀은 40년간 바뀌지 않았습니다. 파생 제품들이 늘어나도 그 집게발 모양에서 출발한다는 본질은 유지됩니다. 불짬뽕맛도, 와사비맛도, 간장게장맛(2023년 2월)도, 마라맛(2026년 1월)도 — 모두 그 집게발 안에 담깁니다.

 

둘째, 일관된 맛의 유지입니다. 꽃게랑은 출시 이후 오리지널 소금 구이의 기준을 흔들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맛을 추가할 때도 기존 제품을 대체하지 않고 라인업을 확장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트렌드를 쫓는 방식이 아니라, 트렌드가 안착한 뒤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합류합니다. 그 신중함이 오히려 브랜드 수명을 늘렸습니다.

 

셋째, 감각 기억입니다. 꽃게랑은 특정 세대에게 '어릴 때 먹던 과자'라는 감각 기억을 형성합니다. 이 기억은 가격에 민감하지 않은 소비를 유도합니다. 오십보 공부노트 | 립스틱 효과 — 불황일수록 편의점 브라우니가 잘 팔리는 이유에서 다룬 감성 소비의 원리가 꽃게랑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사람들은 꽃게랑을 살 때 과자를 사는 게 아니라, 어린 시절의 어느 오후를 사는 것입니다.


부산항에서 연해주로 — 예상 밖의 글로벌 루트

모든 위대한 브랜드 여정이 기획된 것은 아닙니다. 꽃게랑의 러시아 진출은 계획도, 마케팅도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구 소련의 개혁개방 노선에 따라 러시아 선원들이 부산항에 입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간식거리를 찾아 주변 매점을 돌던 그들은 꽃게랑을 발견했습니다. 게맛이 나는 과자. 국토의 대부분이 내륙이라 해산물이 귀했던 그들에게, 꽃게 맛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이 과자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들은 꽃게랑을 사서 연해주를 통해 본국으로 가져갔습니다. 러시아에서 소문이 퍼졌고, 감자 스낵 위주의 현지 시장에서 꽃게랑은 차별화된 맛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결국 정식 수출이 이루어졌고, 현지에서 끄랍칩스(КРАБ ЧИПСЫ) 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끄랍(КРАБ)'은 러시아어로 '게'를 뜻합니다.

 

브랜드가 소비자의 손을 타고 국경을 넘은 것입니다. 빙그레가 러시아를 겨냥해 제품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선원 몇 명의 우연한 발견이 새로운 시장을 열었습니다.

 

빙그레는 이 이야기를 역으로 활용합니다. 2021년, 배우 남궁민을 모델로 '러시아 기업 게르과자 인터내셔널의 대표 제품 끄랍칩스가 한국에 역수입됐다'는 가상의 설정으로 광고를 제작했습니다. 현실을 뒤집은 유머였습니다. 실제로는 한국 과자가 러시아에서 인기를 끈 것인데, 광고 속에서는 러시아 국민과자가 한국에 상륙한다는 구조. 그리고 모두가 그 과자를 '꽃게랑'이라 부르는 결말. 브랜드의 글로벌 경험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마케팅이었습니다.

같은 소재를 음식 문화의 시선으로 만나고 싶다면 → 쫀쿠의 맛있는 이야기 | 에그타르트 — 수도원의 빨래 이야기에서 시작된 황금빛 디저트 대모험에서 음식이 국경을 넘어 브랜드가 되는 또 다른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꽃게랑의 변신들 — 오리지널을 지키며 확장하는 법

꽃게랑은 1986년 출시 이후 조심스럽게 확장해왔습니다. 파생 제품들은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합니다. 불짬뽕맛은 매운맛 열풍 속에서, 와사비맛은 이색 맛 수요에 대응해 탄생했습니다. 2020년에는 광천김맛, 2023년 2월에는 간장게장맛, 2026년 1월에는 마라맛이 출시됐습니다.

 

또 하나의 확장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일어납니다. 꼬뜨-게랑(Côtes Guerang). 꽃게랑의 로고와 이름을 활용해 만든 패션 브랜드입니다. '꽃게랑'을 프랑스식 발음으로 표기한 이 이름은, 과자 브랜드를 패션 아이덴티티로 전환하는 실험이었습니다. 가수 지코가 광고를 촬영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꽃게랑은 단순한 과자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기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식품 브랜드가 패션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들이 그 브랜드를 이미 자신의 정체성 일부로 받아들였을 때만 가능합니다.

브랜드 프리미엄이 원가와 무관하게 형성되는 원리에 대해서는 → 오십보 공부노트 | 베블런 효과 — 비쌀수록 왜 더 팔릴까?에서 더 깊이 읽을 수 있습니다.


마무리 — 단순함의 40년 철학

새우깡은 새우를 팔았고, 꽃게랑은 집게발 모양을 팔았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어느 쪽이 더 기억에 남는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까.

 

빙그레가 스낵 사업을 점차 축소하는 가운데서도, 꽃게랑은 야채타임, 쟈키쟈키, 스모키베이컨칩과 함께 명맥을 유지해왔습니다. 회사가 과자 사업에 큰 투자를 하지 않는 환경에서도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 자리를 지켜온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처음부터 단순하게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현지 문화를 흡수하며 성장한 글로벌 브랜드의 전략에 대해서는 → 브랜드 아카이브 | 스타벅스 — 커피를 판 게 아니라 장소를 발명했다에서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다음 번 편의점 과자 코너를 지나칠 때, 그 친숙한 집게발 모양을 한번 유심히 보시길 권합니다. 1986년 처음 그 집게발이 번쩍 들린 이후 한 번도 내려놓지 않은 자세가 거기에 있습니다. 소유하지 않아도, 그 단순함이 쌓아온 40년의 헤리티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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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나무위키 — 꽃게랑, 나무위키 — 빙그레, 위키백과 — 빙그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빙그레, 한화 나무위키 — 빙그레 계열분리 관련, 빙그레 공식 보도자료(꽃게랑 간장게장맛 출시 2017, 마라맛 출시 2026.01), 뉴시스 2024.10.29 꽃게랑 마라맛 관련, 서울파이낸스·파이낸셜뉴스·아시아경제 2021.06 끄랍칩스 마케팅 관련, 빙그레 공식 보도자료 2024 투게더·바나나맛우유 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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