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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서가

[편의점 서가] 설빙 — 인절미 한 숟갈이 바꾼 빙수 시장의 판, 그리고 캔모아 이야기

by 이안 박(Ian Park)의 브랜드 서재 2026.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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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서가] 설빙 — 인절미 한 숟갈이 바꾼 빙수 시장의 판, 그리고 캔모아 이야기

 


안녕하세요, 브랜드 헤리티지 연구자 이안 박입니다.

 

오늘은 편의점 냉동고가 아닌, 여름마다 긴 줄이 생기는 그 빙수 가게 이야기를 꺼내려 합니다. 설빙입니다.

그런데 이 글은 설빙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때 전국 500개 매장으로 거리마다 있었지만 지금은 인천 부평 일대를 중심으로 10여 개 매장만 남은 이름, 캔모아와 함께 읽어야 더 선명해집니다. 두 브랜드의 서로 다른 운명은 브랜드 연구자에게 하나의 교과서입니다. 같은 시대, 같은 제품 카테고리, 같은 우리나라 시장에서 왜 하나는 전국 600개 매장으로 성장하고 하나는 쪼그라들었는가. 그 답 안에 브랜드의 본질이 있습니다.

 

빙수의 역사 — 조선 빙고에서 팥빙수까지의 이야기는 쫀쿠의 이야기 팬트리 20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안 박의 서재에서는 그 빙수가 브랜드가 되는 순간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두 브랜드가 같은 출발선에 선 시절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빙수 시장은 흥미로운 전환점을 맞습니다. 그 이전까지 빙수는 크게 두 가지 층위에 있었습니다. 하나는 집에서 손으로 깎아 만드는 소박한 얼음과 팥의 조합이었고, 다른 하나는 호텔 라운지나 고급 찻집에서 비싼 값에 즐기는 특식이었습니다. 그 중간 어디엔가 대중적이면서도 조금 특별한 빙수를 원하는 수요가 잠재해 있었습니다.

캔모아 vs 설빙 - 두 시대의 대비

 

**캔모아(Can More)**는 이 수요를 먼저 포착한 브랜드 중 하나였습니다. 1998년 1호점을 개점하며 생과일 주스와 빙수를 전면에 내세운 빙수·과일 전문 프랜차이즈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유의 그네 의자 인테리어와 무한리필 토스트는 학생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전국 500개 가맹점까지 성장하며 2000년대 중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설빙은 2013년, 훨씬 작게 시작됩니다. 창업자 정선희 씨는 인제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유학에서 제빵 기술과 외식 비즈니스를 공부했습니다. 귀국 후 2010년 부산 남포동에 퓨전 떡카페 **'시루'**를 열었습니다. 시루의 출발점에는 개인적인 사연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당뇨병 판정을 받으면서 집안의 식단이 케이크와 빵에서 백설기와 인절미로 바뀌었고, 그 경험이 인절미 빙수라는 아이디어의 씨앗이 됐습니다.

 

시루에서 '인절미 설빙'을 처음 내놓자 입소문이 났습니다. 2013년 4월, 정선희 씨는 부산 남포동에 단독 브랜드 매장으로 설빙 1호점을 열었습니다. 2013년 12월 기준 전국 가맹점 41개. 이듬해 2014년 한 해에만 무려 448개 가맹점이 새로 열렸습니다.


인절미가 만든 차별점 — 브랜드는 재료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다

설빙이 캔모아와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은 맛이나 가격이 아니었습니다. 브랜드 언어였습니다.

인절미 눈꽃빙수 - 차별화의 핵심

 

캔모아가 "다양한 과일과 토핑의 빙수"라는 상품 중심의 언어를 사용했다면, 설빙은 처음부터 **"코리안 디저트 카페(Korean Dessert Cafe)"**라는 카테고리 자체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인절미, 떡, 흑임자, 콩고물. 이 재료들은 단순한 토핑이 아니라 한국 전통 식문화의 코드였습니다. 설빙은 빙수를 파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여름 디저트 문화 전체를 재정의하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었습니다.

 

브랜드 이름도 그 연장선입니다. 설빙(雪氷). 눈(雪)과 얼음(氷). 한자를 사용한 이 이름은 제품의 성격을 즉각적으로 전달하면서, 동시에 전통적이고 고급스러운 뉘앙스를 담았습니다. 영문 'Can More'가 주는 인상과는 출발점 자체가 달랐습니다.

 

기술적 차별화도 중요했습니다. 설빙은 일반 얼음을 갈아 만드는 방식이 아닌, 우유를 얼려 미세하게 간 눈꽃 얼음 제조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얼음 알갱이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이 식감은 기존 빙수와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식감 차이는 SNS 시대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비주얼, 한입 먹었을 때의 감탄을 자아내는 식감, "이거 어디서 먹었어?"라는 질문을 유발하는 독특한 메뉴 조합. 설빙의 성장 곡선은 스마트폰 보급 곡선과 정확히 겹칩니다.

 

코카콜라 vs 펩시 — 100년의 전쟁, 맛이 아니라 문화가 이겼다에서 살펴봤듯, 제품이 아니라 문화를 설계한 브랜드가 시장을 장악합니다. 설빙이 팔고 있던 것은 인절미 빙수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여름이라는 감각 자체였습니다.


캔모아가 쪼그라든 이유 — 카테고리를 소유하지 못한 브랜드의 결말

캔모아는 나쁜 브랜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카테고리를 소유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어야 합니다. 캔모아가 쪼그라들기 시작한 것은 2009년이었습니다. 설빙이 등장하기 4년 전입니다. 캔모아를 밀어낸 것은 설빙이 아니라, 커피 프랜차이즈의 폭풍 성장이었습니다. 2009년 전후 카페베네, 이디야, 투썸플레이스 등 커피 전문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디저트 업계 전체가 커피 중심으로 재편됐습니다. 캔모아는 메뉴에 스파게티, 떡볶이 등을 추가하며 살아남으려 했지만, 커피로 향하는 소비자의 발걸음을 잡지 못했습니다.

 

브랜드 전략에서 가장 강력한 포지션은 카테고리의 대명사가 되는 것입니다. 캔모아는 "빙수·과일 전문점"이라는 카테고리의 한 플레이어였지만, 그 카테고리의 대명사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 카테고리 자체가 커피에 흡수될 때, 캔모아에게는 돌아갈 자기만의 섬이 없었습니다.

 

캔모아 본사는 현재 전국 어디에 자신의 매장이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고 알려졌습니다. 서울과 부산의 지점들은 전부 폐업했고, 지금은 인천 부평 지역을 중심으로 10여 개 매장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부평테마의거리 본사직영점, 부평점, 부평문화의거리점 등 부평 일대에 집중된 모습입니다. 2022년 말 인천 부평구에 신규 매장이 열리며 생존 신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전국 500개였던 브랜드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찾아오는 손님이 있고, 리뷰를 남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브랜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과 추억으로 남아 명맥을 유지하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캔모아는 후자를 선택한 것처럼 보입니다.


설빙의 다음 챕터 — 1,300억짜리 K-디저트의 가능성과 과제

설빙은 국내에서 자리를 잡은 이후 빠르게 해외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2016년 6월 일본 하라주쿠에 1호점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열었던 6개 매장은 모두 폐점했습니다. 중국에서는 현지 업체와의 상표권 분쟁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물기도 했습니다. 해외 진출은 생각보다 험난했습니다.

설빙 성장 타임라인 (2010-2023)

 

그럼에도 설빙의 브랜드 가치는 계속 올라갔습니다. 2023년, 사모펀드 UCK파트너스가 설빙 지분 80%를 1,300억원에 인수합니다. 설빙의 기업 가치를 약 1,600억원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UCK파트너스는 앞서 공차를 500억원에 인수해 2,800억원에 매각한 성공 경험을 가진 F&B 전문 투자사입니다. 설빙을 공차처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2023년 기준 연매출 255억원, 영업이익 99억원, 영업이익률 약 38~40%. 전국 약 600개 가맹점. 인수 후 2년도 되지 않아 사모펀드는 배당을 두 차례 받으며 투자금의 3분의 1을 이미 회수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설빙의 사계절 전략입니다. 빙수는 여름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을 설빙은 의도적으로 깨려 합니다. 인절미 토스트, 찰떡 아이스크림, 흑임자 디저트 등 사계절 내내 방문할 이유를 만드는 메뉴 확장. 이것은 단순한 메뉴 다양화가 아니라 계절 의존성이라는 카테고리의 한계를 브랜드 스스로 극복하려는 시도입니다. 빙수 카페를 사계절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입니다.

 

물이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지 경제의 시선으로 읽고 싶다면 → 오십보 | 시장의 식탁 | 물의 경제학 1편 — 공짜인 물에 왜 돈을 내는가


이안 박의 마무리 — 사라진 이름과 남아있는 이름이 가르쳐주는 것

캔모아와 설빙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브랜드는 무엇을 파는가.

 

캔모아는 빙수를 팔았습니다. 설빙은 한국의 여름 디저트 문화를 팔았습니다. 재료는 비슷했고, 시장도 같았고, 경쟁 구도도 닮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의 기억 속에 자리를 잡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빙수는 대체 가능한 상품이지만, 인절미 눈꽃빙수라는 경험은 설빙만이 소유한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캔모아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인천 부평, 경기 용인, 충남 공주에서 여전히 영업 중입니다. 본사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매장들이지만, 찾아오는 손님이 있고, 이젠 어른이 된 '그때 그 중학생'들이 추억을 안고 다시 방문합니다. 500개에서 10여 개로. 그것은 실패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브랜드가 기억으로 남는 방식의 다른 형태이기도 합니다.

 

맥도날드 vs 버거킹 — 황금 아치와 왕관이 싸운 70년에서 살펴봤듯, 브랜드 전쟁의 승자는 항상 더 좋은 제품을 만든 쪽이 아니었습니다. 더 선명한 언어를 가진 쪽이었습니다.

 

다음 번 설빙 앞에 줄을 서실 때, 잠깐 멈추어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여러분이 기다리는 것이 빙수인지, 아니면 설빙인지를요. 그 차이가 바로 브랜드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Nomen est omen. 이름이 곧 운명이다. — 雪氷. 두 글자가 브랜드의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

소유하지 않아도, 그 한 그릇 안에 담긴 브랜드의 선택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디저트 헤리티지가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참고 자료

위키백과 — 설빙(기업), 나무위키 — 설빙, 나무위키 — 캔모아, 부산일보 (2013.05.06) — 설빙 카페 창업기, 자유기업원 (2015.04) — 빙수의 새로운 생각 정선희 대표, 인사이트 (2018.03) — 그 많던 캔모아 근황, SBS 스브스뉴스 (2018.03.10) — 그네 의자와 무한리필 토스트, 캔모아 어디로, 한국경제 (2023.08.29) — 설빙 사모펀드 UCK파트너스 1300억 인수, 뉴스1 (2025.03) — 설빙 운용 사모펀드 2년 안에 투자금 3분의 1 회수, 다모이 창업가이드 — 설빙 정선희 대표 창업 배경 지식재산권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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