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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서가

[편의점 서가] 연양갱 — 양고기 국에서 시작해 편의점 냉장고까지, 1,500년의 여행

by 이안 박(Ian Park)의 브랜드 서재 2026.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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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서가] 연양갱 — 양고기 국에서 시작해 편의점 냉장고까지, 1,500년의 여행

 


안녕하세요, 브랜드 헤리티지 연구자 이안 박입니다.

 

편의점 계산대 옆 진열대에 조용히 놓여 있는 갈색 막대 하나. 55그램, 140킬로칼로리. 화려한 포장도, 콜라보 굿즈도, SNS 챌린지도 없이 — 그냥 거기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용한 막대가 한국 과자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현역 제품이고, 누적 매출 7,800억 원, 누적 판매량 35억 개를 기록한 괴물급 스테디셀러입니다.

 

연양갱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1945년 해방 직후 서울로만 가서는 안 됩니다. 이 이야기는 훨씬 멀리, 이름 속에 담긴 양고기 국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장. 羊羹 — 양고기 국에서 팥 과자까지, 1,500년의 변신

양갱(羊羹)의 한자를 풀면 **羊(양, 양고기) + 羹(갱, 국)**입니다. 직역하면 "양고기 국"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달달하고 쫀쫀한 그 과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죠.

연양갱 — 양고기 국에서 시작해 편의점 냉장고까지, 1,500년의 여행"

양갱이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이름이 우연히 같아서 생긴 오해라는 설도 공존합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일본에서 이 이름이 붙은 음식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로 완성됐다는 사실입니다. 가마쿠라~무로마치 시대, 선종(禪宗) 불교 승려들이 고기를 먹을 수 없어 팥을 쓰고, 굳히는 재료로 우뭇가사리(홍조류 해조)를 끓여 만든 **한천(寒天)**을 활용하면서, 양고기 국이라는 이름과 전혀 다른 음식이 탄생합니다. 1589년, 와카야마의 과자점 **스루가야(駿河屋)**에서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의 **연양갱(練り羊羹)**이 완성됐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쫀쿠의 맛있는 이야기 — 젤리·무스·한천·양갱의 굳힘 과학에서 자세히 설명된 것처럼, 한천(agar)은 젤라틴과 완전히 다른 물질입니다. 젤라틴은 체온(37°C)에서 녹기 시작하지만, 한천은 굳는점이 30~40°C로 한여름 실온에서도 형태를 유지합니다. 양갱이 냉장 보관 없이도 편의점 선반에서 멀쩡히 존재할 수 있는 과학적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역사적 아이러니가 하나 있습니다. 한천의 원료인 우뭇가사리는 제주도와 남해안 바다에서 풍부하게 났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우뭇가사리가 일본으로 대량 수출돼 양갱 원료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바다풀이 일본 과자의 재료가 됐다가, 그 과자가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온 셈입니다.

양갱 1,500년 타임라인


2장. 1945년, 해방과 함께 태어난 과자 — 피란길에도 솥을 들고 갔다

연양갱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는 순간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입니다. 해태제과 창업주 박병규는 일제강점기 나가오카(永岡) 제과의 경리직원으로 일하며 제과 노하우를 익혔고, 광복 후 그 공장 설비를 동업자들과 함께 불하받아 해태제과를 창업합니다. 그 첫 번째 제품이 바로 연양갱이었습니다. "굶주린 국민들의 배를 채우겠다"는 신념으로, 가마솥에 팥앙금과 한천을 넣어 졸이는 전통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연양갱의 진짜 의지를 보여준 것은 풍요가 아니라 결핍의 순간이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태제과 임직원들은 양갱 솥과 보일러를 들고 대전, 대구, 부산으로 이동하며 생산을 이어갔습니다. 휴전 때까지 부산 피란지에서도 연양갱은 계속 만들어졌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단순한 미담이 아닙니다. 브랜드가 어떤 조건에서 신뢰를 쌓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브랜드 아카이브] 구찌 — 위기가 만든 브랜드에서 살펴봤듯, 위기가 닥쳤을 때 멈추지 않은 브랜드가 결국 살아남습니다. 전쟁 중 피란지에서 솥을 지킨 그 선택이, 80년 후 편의점 선반 위의 연양갱을 가능하게 한 뿌리입니다.

 

2004년 크라운제과가 해태제과를 인수해 크라운해태로 통합됐고, 현재까지 연양갱은 크라운해태의 브랜드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양갱 시장의 점유율은 연양갱(해태) 약 80%, 밤양갱(크라운) 약 20%로, 두 제품이 같은 회사 안에 공존하는 독특한 구조입니다.


3장.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 노래 한 곡이 만든 매출 폭발

2024년 2월, 가수 **비비(BIBI)**가 부른 노래 **〈밤양갱〉**이 공개됐습니다. 장기하가 작사·작곡하고 비비가 불렀습니다.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이라는 가사가 중독적인 멜로디와 결합하면서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했고, 이 현상은 즉각 편의점 매출로 연결됩니다.

 

노래 발매 후 한 달, CU의 연양갱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2.3% 증가, GS25에서는 35.6% 증가를 기록했습니다. 크라운해태는 빠르게 비비와 협업해 밤양갱 한정판을 출시했고, 편의점들도 밤양갱 관련 프로모션에 뛰어들었습니다.

 

이 현상을 단순히 "운 좋은 마케팅 효과"로 보면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밤양갱〉이 그토록 빠르게 반응을 만든 것은, 양갱이 이미 한국인의 집단 기억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달디단 밤양갱"이라는 가사가 할머니 집 서랍 속의 무언가를 건드렸습니다. 트리거는 노래였지만, 반응을 증폭시킨 것은 80년의 축적이었습니다.

 

[편의점 서가] 삼송빵집 × 옥수수 크림빵 — 지역 브랜드가 전국 편의점에 오기까지에서 살펴봤듯, 쑥·흑임자·팥·인절미를 좋아하는 MZ세대의 입맛이 오래된 것들을 "레트로 감성 간식"으로 재발견하게 만들었습니다. 70~80년 된 스테디셀러가 순식간에 트렌드 아이템이 되는 역전의 순간이었습니다.


4장. 연양갱이 80년을 버틴 이유 — 변하지 않는 것이 가장 강하다

연양갱의 레시피는 지난 8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팥 앙금, 한천, 설탕, 물엿. 더 달콤하게 만들거나, 트렌드에 맞춰 플레이버를 바꾸거나, 포장을 화려하게 바꾸는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누적 매출 7,800억 원, 누적 판매량 35억 개라는 숫자를 80년으로 나누면 하루 평균 약 12만 개가 팔린 셈입니다. 전쟁 중에도, 외환위기 때도, 팬데믹 때도 — 연양갱은 편의점과 마트 선반에 있었습니다. 이 일관성 자체가 브랜드입니다.

 

[편의점 서가] 포카리스웨트 — 수액에서 시작된 음료에서 살펴봤듯, 40년간 성분 배합을 거의 바꾸지 않은 포카리스웨트가 이온음료 시장 1위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일관성이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구매를 만들며, 구매의 반복이 브랜드 기억을 만듭니다.

[조선의 브랜드 서재 1편] 개성인삼 — 은과 맞먹은 뿌리의 개성상인들이 홍삼 제조법을 수백 년 지킨 것처럼, 연양갱은 레시피의 핵심을 지킴으로써 시간을 브랜드 자산으로 쌓아왔습니다.


이안 박의 마무리 — 편의점 진열대의 가장 조용한 혁명가

연양갱은 편의점에서 가장 시끄럽지 않은 제품입니다. 화려한 포장도, 콜라보 마케팅도, 인플루언서 협찬도 없습니다. 그냥 거기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자리에.

 

그런데 그 조용함이 가장 강력한 브랜드 언어입니다. "나는 여기 있었고, 앞으로도 여기 있을 것입니다." 이름 속에 양고기 국의 흔적을 품은 과자가 선종 승려의 손에서 팥 과자가 됐고, 1589년 와카야마에서 완성된 형태가 1945년 서울에서 다시 태어났으며, 전쟁 중 피란지에서도 솥을 지켰고, 2024년 노래 한 곡에 35.6% 매출이 뛰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55그램 막대 하나 안에 들어있습니다.

 

다음번에 편의점에서 연양갱을 집어 드실 때, 그 갈색 막대 안에 수백 년의 여행과 전쟁 중 피란지의 솥과 2024년 〈밤양갱〉 멜로디가 모두 담겨 있다는 사실을 잠시 떠올려보시길 권합니다.

 

Dulce et antiquum, sempiternum. 달콤하고 오래된 것은, 영원합니다. — 이안 박이 연양갱의 80년을 담아 만든 문장입니다.

소유하지 않아도, 그 역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달콤해질 수 있는 브랜드 유산이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참고 자료

  • 나무위키 — 연양갱 (링크)
  • 나무위키 — 양갱 (링크)
  • 한국경제 — 연양갱 1945년 탄생·피란 생산 (링크)
  • 헤럴드경제 — 연양갱 누적 매출 7,800억·35억 개 (링크)
  • 국민일보 — 밤양갱 편의점 매출 효과 (링크)
  • 위키백과 — 양갱 (링크)

브랜드 서재 by 이안 박 "소유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럭셔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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