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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서가

[편의점 서가] 삼겹살 — 국민 고기가 되기까지, 그리고 브랜드가 탄생한 이유

by 이안 박(Ian Park)의 브랜드 서재 2026.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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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서가] 삼겹살 — 국민 고기가 되기까지, 그리고 브랜드가 탄생한 이유

 


안녕하세요, 이안 박입니다.

 

오늘 편의점 서가의 냉장 코너 앞에 서서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삼겹살입니다. 찬 공기 속에 붉은 살과 하얀 지방이 켜켜이 쌓인 그 단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고기는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삼겹살

 

지금은 한국인 1인당 연간 돼지고기 소비량이 약 21kg 수준(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달하고, 그 중심에 삼겹살이 있습니다. 한국 육류 시장 전체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272억 달러(약 37조 원)**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삼겹살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처음 등재된 것은 불과 1994년의 일입니다. 그 전까지 이 부위는 살코기가 적고 기름만 많은 "하위 부위"로 여겨졌습니다.

 

브랜드의 탄생은 언제나 이런 역설에서 시작됩니다. 아무도 원하지 않던 것이 어느 순간 모두가 원하는 것이 됩니다.


1장. "삼겹살"이라는 이름의 역사 — 1931년에서 1994년까지

삼겹살은 돼지의 갈비 인근 뱃살 부위입니다. 지방층이 세 겹으로 겹쳐 보이기 때문에 삼겹살, 혹은 세겹살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이름 자체가 이미 고기의 정체성을 설명합니다. 살이 아니라 지방이 주인공인 부위라는 것을.

삼겹살 역사 타임라인 (1931-2007)  –

 

이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31년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에서 "세겹살"이라는 표기였습니다. 1934년 동아일보에는 "3겹살이 제일 맛있다"는 기사가 실렸고, 1959년 경향신문에서 지금의 "삼겹살"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긴 시간 동안 삼겹살은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전환점은 두 번 찾아왔습니다. 1970년대 산업화 시기, 탄광 광부와 공장 노동자들이 저렴하고 칼로리 높은 삼겹살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8년 IMF 외환위기, 실직자들이 삼겹살 전문점 창업에 나서면서 전국 골목에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2003년에는 농가가 주도한 **'삼겹살 데이(3월 3일)'**가 탄생했고, 2007년 소비자 선호도 조사에서 삼겹살은 **85.5%**로 돼지고기 부위 중 압도적 1위에 올랐습니다. 하위 부위에서 국민 고기로의 여정이 완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서구에서 이 부위를 부르는 명칭은 "Pork Belly", 돼지 뱃살입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주로 베이컨의 원료 혹은 구이용으로 소비되어 온 부위입니다. 일본에서는 **"바라(バラ)"**라고 불리며 라멘 토핑, 조림, 구이 등 다양한 용도로 쓰입니다. 그러나 두툼하게 잘라 숯불 위에서 직화로 구워 상추에 싸먹는 방식은 오직 한국만의 문화였습니다.


2장. 1990년 이천, 13명의 농가가 모였다 — 도드람의 탄생

브랜드 없는 고기 시장에서 가장 먼저 "이름"을 붙인 것은 도드람양돈농협이었습니다.

도드람 창립 스토리 (1990, 13농가)

 

1990년 10월, 경기도 이천과 여주 일대의 양돈 농가 13명이 협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출발 규모는 총 1만 7천 두. 그때만 해도 이것은 작은 농가들의 연대였습니다. 그러나 이 조합은 35년이 지난 지금, 종돈 관리부터 사료 생산, 도축, 가공, 유통, 판매까지 전 과정을 수직으로 통합한 한국 최대의 양돈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2025년 한돈 브랜드 인기 순위 1위, 100g당 2,900원, GS25와 위드미 편의점에서 MAP 포장 생육으로 판매되는 그 이름입니다.

 

도드람이 시사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삼겹살에 브랜드가 붙으려면 먼저 공급망 전체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농가에서 키웠는지, 어떤 사료를 먹었는지, 어떤 환경에서 도축됐는지를 보장할 수 없으면 브랜드는 허명(虛名)에 그칩니다. 도드람이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를 택한 것은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 **품질의 소급 가능성(traceability)**을 만들기 위한 구조적 선택이었습니다.

 

[조선의 브랜드 서재 1편] 개성인삼 — 은과 맞먹은 뿌리에서 살펴봤듯, 조선의 개성상인들도 상인 집단 전체의 신뢰를 하나의 브랜드로 관리했습니다. 도드람의 협동조합 구조는 그 조선의 브랜드 문법과 정확히 같은 원리로 작동합니다.


3장. MAP 포장이 바꾼 것 — 기술이 브랜드가 되는 순간

삼겹살 브랜드 경쟁의 또 다른 축은 포장 기술입니다.

MAP 포장 기술

 

**MAP(Modified Atmosphere Packaging, 가스치환포장)**는 식품 포장 내부의 산소를 질소와 이산화탄소 혼합 가스로 대체하는 기술입니다. 고기가 산화되는 속도를 극적으로 낮춰 신선도를 유지합니다. 한국 편의점에 MAP 포장 생육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17년 7월 GS25와 도드람의 협업에서였습니다.

 

그 이전까지 편의점 고기는 냉동이거나, 가공품이거나, 양념육이었습니다. "생육을 편의점에서 산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MAP 포장은 이 공식을 바꿨습니다. 기술이 유통 채널을 바꿨고, 유통 채널의 변화가 소비 행동을 바꿨습니다. 현재 GS25의 '장보기 콘셉트 매장' 4,000여 곳에서 도드람 한돈이 냉장 생육 그대로 판매되는 것은 그 연장선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숫자가 있습니다. 한돈의 유통기한은 10.3일, 수입산은 48.9일입니다. 숫자만 보면 수입산이 유리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차이는 수입 운송 과정에서 이미 냉동·냉장 처리가 장기간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MAP 기술은 한돈의 10.3일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그 10.3일 안에 담긴 본연의 신선도를 끝까지 지키는 기술입니다. 신선도를 연장하는 것과 신선도를 보존하는 것은 다릅니다.


4장. 수입산의 도전 — 스페인, 독일, 칠레가 한국 냉장고로 들어온 사연

2024년 기준 한국의 냉동 삼겹살 수입 1위 국가는 스페인, 2위 네덜란드, 3위는 2020년 ASF(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으로 수입이 중단됐다가 2024년 재개된 독일입니다. 냉장 삼겹살은 캐나다가 1위입니다. 각국의 대표 브랜드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칠레산의 고원돈·아싸(ASSA), 독일산의 퇴니스·슈바인골드, 네덜란드산의 두메코가 대표적입니다.

 

오십보의 경제 읽기 — 옥수수의 경제학에서 다뤘듯, 수입 삼겹살의 가격 경쟁력 뒤에는 옥수수 사료 가격과 국제 물류 구조가 있습니다. EU와의 FTA 발효로 냉동 삼겹살 관세는 사실상 0% 수준까지 내려왔습니다.

 

이 흐름에서 가장 흥미로운 위치를 차지한 것이 **이베리코(Ibérico)**입니다. 스페인 흑돼지 이베리코는 도토리를 먹여 키운 벨로타(Bellota) 등급이라는 특수성으로 한국 시장에서 프리미엄 포지셔닝에 성공했습니다. [편의점 서가] 명품 버터 — AOP가 버터를 명품으로 만드는 방식에서 살펴봤듯, 원료의 이야기가 곧 브랜드의 이야기가 됩니다. "도토리를 먹여 키운 돼지"라는 단 하나의 문장이 이베리코를 수입 삼겹살 시장의 프리미엄 층에 올려놓았습니다.


5장. 한돈 vs 수입산 — 숫자로 읽는 진실, 그리고 브랜드의 문법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의 관능평가 결과는 명확합니다. 맛 점수에서 한돈 7.33점, 냉장 수입산 6.88점, 냉동 수입산 6.21점입니다. 소비자 만족도는 한돈 60%, 수입산 **41.4%**였습니다.

한돈 vs 수입산 비교

 

2025년 한돈 브랜드 인기 순위를 보면, **도드람(2,900원/100g)**이 1위, 포크밸리(2,750원) 2위, 하이포크(2,800원) 3위, 산청한돈(2,600원) 4위, 팜스코(2,700원) 5위입니다. 각 브랜드가 앞세우는 서사도 다릅니다. 도드람은 "13개 농가의 연대와 수직 통합", 포크밸리는 "신선도", 하이포크는 "잡내 없는 부드러움", 산청한돈은 "청정지역", 팜스코는 "균일한 고기결". 모두 같은 삼겹살을 팔지만, 각자가 선택한 언어는 다릅니다.

 

그러나 이 숫자들이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100g당 가격이 수입 냉동 2,500원 대 한돈 2,900~3,000원인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어떤 상황에서 먹느냐'에 따라 선택을 달리합니다. 혼자 먹는 저녁이라면 수입 대패삼겹살, 가족 모임이나 손님 접대라면 한돈이라는 비공식적 소비 문법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6장. 편의점 삼겹살이 바꾼 것 — "고기를 산다는 행위"의 재정의

편의점 삼겹살 혁명  –

편의점 삼겹살의 부상은 단순한 유통 채널의 확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기를 산다는 행위"의 재정의입니다. 정육점에서 직접 골라야 했던 것, 마트에서 대용량으로 사야 했던 것이, 이제 편의점에서 1인분 소포장으로 살 수 있게 됐습니다. GS25의 '한 끼 양념육' 200g 4,900원, CU의 노브랜드 대패삼겹살 700g 1만 원은 그 전환의 상징입니다. 편의점 냉장육 구매 경험이 있는 2030 소비자는 **92.6%**에 달합니다.

 

[편의점 서가] 필라델피아 크림치즈에서 살펴봤듯, 편의점 냉장 공간은 이제 단순한 간편식 진열대가 아니라 프리미엄 식품 경험의 접점이 됐습니다. 그 공간에서 "도드람"이라는 이름이 붙은 삼겹살이 팔린다는 것은, 브랜드가 유통 채널을 타고 소비자의 일상 안으로 들어오는 가장 조용하고 강력한 방식입니다.


이안 박의 마무리 — 하위 부위를 어떻게 설명했느냐의 역사

삼겹살 브랜드의 역사는 결국 "하위 부위를 어떻게 설명했느냐"의 역사입니다.

 

도드람은 13개 농가의 연대로 품질의 서사를 만들었습니다. 이베리코는 도토리라는 사료 이야기로 프리미엄의 서사를 만들었습니다. MAP 포장 기술은 신선도라는 서사를 편의점 냉장고 안에 심었습니다. 수입산은 가격이라는 서사로 시장을 넓혔습니다. 그 어떤 서사도 "이 부위가 원래 값싸고 기름진 하위 부위였다"는 사실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브랜드 아카이브] 구찌 — 마구 장인에서 팝 아이콘까지에서 살펴봤듯, 브랜드는 언제나 원점이 아니라 가능성을 향해 이야기를 합니다. 삼겹살이 국민 고기가 된 것은 고기가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고기를 설명하는 말들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1931년 "세겹살"이라는 이름이 조리서에 처음 등장한 지 90년이 지난 지금, 그 이름은 한국인의 기억 속 가장 따뜻한 풍경 중 하나가 됐습니다. 연기 피어오르는 석쇠 위, 지글거리는 소리, 상추 한 장. 브랜드가 기억이 됐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마케팅이 아닙니다.

Cibus non solum corpus, sed et memoriam nutrit. 음식은 몸만이 아니라 기억도 먹여 살린다. — 이안 박이 삼겹살의 90년 여정에 붙이는 문장입니다.

Cibus non solum corpus, sed et memoriam nutrit.

 

소유하지 않아도, 그 이름 뒤에 쌓인 시간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맛볼 수 있는 브랜드 유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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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서재 by 이안 박 "소유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럭셔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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