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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서가] 히비스커스 — 같은 꽃이 나라마다 다른 이름으로 팔리는 이유

by 이안 박(Ian Park)의 브랜드 서재 2026.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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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서가] 히비스커스 — 같은 꽃이 나라마다 다른 이름으로 팔리는 이유

 


안녕하세요, 이안 박입니다.

 

오늘은 편의점 서가에서 음료 코너 쪽으로 걸어갑니다.

 

진열대 한쪽에 붉은 꽃 그림이 인쇄된 티백이나 음료 한 병이 놓여 있습니다. 라벨에는 **히비스커스(Hibiscus)**라고 적혀 있습니다. 혹은 로즐(Roselle). 혹은 자메이카 플라워(Jamaica Flower). 같은 꽃인데, 라벨마다 이름이 다릅니다. 어떤 나라에서 왔느냐에 따라 다른 이름을 달고 팝니다.

히비스커스: 아프리카의 붉은 꽃이 세계를 여행하며 얻은 수만 개의 이름

 

그리고 지금 이 계절, 한국의 길가에는 무궁화가 피어 있습니다.

 

무궁화도 히비스커스입니다. 정확히는 히비스커스 사이리아쿠스(Hibiscus syriacus). 편의점 음료에 들어가는 것은 히비스커스 사브다리파(Hibiscus sabdariffa). 같은 속(屬)이지만 다른 종(種)의 식물입니다. 사촌뻘인 셈입니다. 무궁화는 꽃잎 전체를 쓰고, 차로 마시는 히비스커스는 꽃받침(칼릭스, calyx)을 씁니다.

 

같은 속의 식물이, 한국에서는 국가를 대표하는 꽃이 되고, 아프리카에서는 음료가 되고, 이집트에서는 의약품이 되고, 멕시코에서는 길거리 음식이 됐습니다. 그리고 2020년대 편의점 음료 코너에서는 '건강 트렌드 음료'의 얼굴이 됐습니다.

 

이름이 다르다는 것은 여행의 증거입니다.


1장 — 기원: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붉은 꽃

히비스커스 사브다리파는 아프리카 기원이 유력하며, 특히 **수단(Sudan)**을 중심으로 한 기원설이 널리 거론됩니다(다만 일부 학계에서는 남아시아 기원설도 함께 논의됩니다). 수천 년 전부터 나일강 유역의 사람들이 이 꽃의 붉은 꽃받침을 말려 음료로 마셨습니다.

기원의 땅, 나일강변의 붉은 환대

 

이집트에서는 **카르카데(Karkade)**라 불렸습니다. 더운 날 체온을 낮추는 음료로, 또는 의례 음료로 사용됐습니다. 수단과 이집트에서는 오늘날에도 결혼식, 환영 자리에서 이 붉은 음료가 빠지지 않습니다.

 

서아프리카로 퍼지면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세네갈에서는 비삽(Bissap). 가나에서는 소볼로(Sobolo). 나이지리아에서는 조보(Zobo). 같은 식물, 같은 음료, 다른 이름. 그런데 이름이 달라도 쓰임은 같습니다. 손님에게 대접하는 환대의 음료, 축제의 음료, 기쁨의 붉은 음료.

 

이 식물이 아프리카에서 대서양을 건넌 것은 16세기 이후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이동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2장 — 중간항로(Middle Passage): 꽃이 대서양을 건넌 길

15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대서양 노예무역은 사람만이 아니라 음식과 식물의 이동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중간항로(Middle Passage), 대서양을 건넌 씨앗

 

역사학자 **주디스 카니(Judith Carney)**는 저서 Seeds of Memory에서 이것이 이중 목적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노예들이 익숙한 식물을 먹어 살아남게 하는 것이 하나였고, 식물 자체가 새 대륙의 플랜테이션에서 사용될 자원이었습니다.

 

히비스커스는 그렇게 카리브해와 라틴아메리카, 미국 남부로 이식됐습니다. 열대 기후가 서아프리카와 비슷했기 때문에 새 땅에서도 잘 자랐습니다.

 

자메이카에 도착한 이 꽃은 **소렐(Sorrel)**이라 불렸습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 자메이카 사람들은 붉은 소렐 음료를 만들어 축제를 맞이합니다. 이 음료는 아프리카의 비삽이 대서양을 건너 크리스마스 음료가 된 것입니다. 수백 년의 여정이 한 잔의 붉은 음료에 담겼습니다.

 

음식 역사가 **마이클 트위티(Michael W. Twitty)**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흑인의 기쁨이며 흑인의 생존이고, 흑인의 문화이며 흑인의 음식 문화이자 음료 문화입니다 — 히비스커스 한 잔 안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3장 — 멕시코에서 "자메이카"가 된 이유

멕시코에서 이 음료는 **아과 데 하마이카(Agua de Jamaica)**라고 불립니다. 직역하면 '자메이카 물'입니다. 멕시코의 국민 음료 중 하나이자, 타코 가게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아과 프레스카(Agua Fresca)의 대표 메뉴입니다.

멕시코의 국민 음료, 아과 데 하마이카(Agua de Jamaica)

 

이름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히비스커스가 자메이카를 경유해 멕시코로 들어왔다는 설,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자메이카라는 지명이 이 꽃의 별칭으로 굳었다는 설 등입니다. 정확한 유래를 하나로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지명이 이 음료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굳어진 사례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멕시코 사람들에게 이 음료의 이름이 자메이카라는 국가와 거의 관련 없다는 점입니다. '자메이카'는 그냥 이 꽃(혹은 이 음료)의 이름입니다. 멕시코에서 한 가지 더 특이한 점은 이 음료를 차게 마신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따뜻하게도, 차게도 마시지만, 멕시코의 더운 기후에서는 냉음료가 됐습니다. 기후가 마시는 방법까지 바꿨습니다.

 

멕시코에는 예로부터 다양한 냉음료 문화가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의 아과 데 하마이카는 히비스커스가 대서양을 건너온 식민지 시대 이후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안전한 설명입니다. 토착의 냉음료 문화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꽃이 결합되어, 지금 타코 가게의 붉은 음료가 됐습니다.


4장 — 이름의 지도: 같은 꽃이 세계에서 불리는 방식

히비스커스 사브다리파가 세계에서 불리는 이름들을 나열하면, 그것만으로도 이 꽃의 여행 경로가 그려집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이 꽃의 이름들은 이동 경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달라집니다. 이집트와 북아프리카에서는 카르카데(Karkade), 수단에서는 카르카데이(Karkadaih), 세네갈과 프랑스어권 서아프리카에서는 비삽(Bissap), 가나에서는 소볼로(Sobolo), 나이지리아에서는 조보(Zobo), 자메이카와 영어권 카리브해에서는 소렐(Sorrel),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하마이카(Jamaica) 또는 플로르 데 하마이카(Flor de Jamaica), 영어권 건강식품 시장에서는 로즐(Roselle) 또는 히비스커스(Hibiscus), 태국에서는 끄라지아프(กระเจี๊ยบ, Krachiap), 그리고 한국 편의점 음료 코너에서는 다시 히비스커스(Hibiscus)로 통일됩니다.

 

수단(카르카데) → 서아프리카(비삽/조보) → 대서양 노예무역 → 카리브해(소렐) → 멕시코(하마이카) → 글로벌 건강음료(히비스커스)

 

이름이 바뀔 때마다 그 이름에는 새로운 문화가 입혀졌습니다. 소렐은 크리스마스가 됐고, 하마이카는 타코 가게가 됐고, 비삽은 환대가 됐고, 히비스커스는 건강 트렌드가 됐습니다. 꽃은 하나인데, 브랜드가 여러 개가 됐습니다.


5장 — 브랜드가 된 이름: 누가 이 꽃으로 돈을 벌었나

히비스커스가 글로벌 건강음료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이후입니다.

이름의 지도, 글로벌 허브차 시장의 표준

 

먼저 움직인 것은 허브차 시장이었습니다. 여러 대형 허브차 브랜드들이 히비스커스 블렌드 티를 주요 제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빨간색이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카페인 프리이며, 새콤달콤한 맛이 폭넓은 소비자를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이름이 히비스커스로 통일됐습니다. 비삽도, 소렐도, 하마이카도 아닌, 학명에서 따온 중립적인 영어 이름. 시장이 원산지의 문화 문맥을 지우고 성분의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두 번째 물결은 건강 기능성 음료 시장이었습니다. 2010년대 들어 히비스커스의 항산화 효과, 혈압 관련 연구들이 쌓이면서 기능성 음료로 포지셔닝됐습니다. 이 시기에는 '히비스커스'라는 이름 앞에 여러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수퍼플라워(Super Flower), 플로럴 부스터(Floral Booster) 같은 표현들입니다. 마케팅이 원산지의 이야기 대신 기능성의 언어를 선택했습니다.

 

세 번째 물결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브랜드들의 역습이었습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비삽, 소렐, 조보를 전면에 내세운 소규모 음료 브랜드들이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브랜드들은 '히비스커스'가 아니라 원래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 뒤에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역사, 중간항로의 기억, 공동체의 음료라는 이야기를 붙입니다. 기능성 대신 정체성을 판매합니다.

디아스포라의 역습, 정체성을 파는 음료

같은 꽃으로 만든 음료가, 어떤 이름을 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소비자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팔립니다.


6장 — 무궁화와 히비스커스: 같은 속, 다른 운명

이쯤에서 무궁화 이야기를 잠깐 꺼냅니다.

무궁화와 히비스커스: 같은 뿌리, 다른 여정

 

무궁화(히비스커스 사이리아쿠스, Hibiscus syriacus)와 음료용 히비스커스(히비스커스 사브다리파, Hibiscus sabdariffa)는 같은 히비스커스 속(屬, Genus)이지만 다른 종(種)입니다. 사촌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궁화의 원산지는 중국과 동아시아입니다. 한국에서 무궁화가 언제부터 나라를 대표하는 꽃이 됐는지는 명확한 단일 기록이 없습니다. 고려 시대 기록에 이미 무궁화가 등장하고, 조선 시대를 거치며 점차 국가를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무궁화'라는 이름 자체는 '무궁히 피는 꽃'이라는 뜻입니다. 7월부터 9월까지, 한 나무에서 매일 새 꽃이 피고 집니다. 오랜 기간 이어서 피는 꽃입니다.

 

서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사브다리파가 대서양을 건너며 이름이 바뀐 것처럼, 사이리아쿠스는 동아시아에서 한국에 뿌리를 내리며 국가의 상징이 됐습니다. 같은 속의 식물이, 한 쪽은 식민지와 노예무역의 역사를 품고 아메리카로 건너갔고, 다른 한 쪽은 한국을 대표하는 꽃이 됐습니다. 식물의 여행은 언제나 인간의 역사와 함께 이동합니다.


7장 — 편의점 음료 코너의 히비스커스: 이름이 사라진 자리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옵니다.

 

한국 편의점 음료 코너의 히비스커스 음료는 대부분 라벨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히비스커스 추출물", "로즐 플라워", "안토시아닌 풍부". 건강 기능성의 언어로 가득합니다. 비삽도, 소렐도, 하마이카도, 카르카데도 없습니다.

편의점 냉장고, 이름이 사라진 자리의 건강 기능성

 

그것이 글로벌 식품 시장이 원산지의 문화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성분은 가져오고, 이름은 바꾸고, 이야기는 지웁니다. 카놀라유 편에서 유채기름이 '카놀라'가 됐듯, 비삽과 소렐과 하마이카가 '히비스커스'가 됐습니다. 원산지의 문화 문맥이 걷혀야 글로벌 시장에서 팔리기 쉬운 중립적인 상품이 됩니다.

 

하지만 그 이름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세네갈 이민자 커뮤니티가 운영하는 파리의 비삽 가게에서, 자메이카 커뮤니티가 크리스마스마다 담그는 소렐 음료에서, 나이지리아 레스토랑의 조보 한 잔에서 원래 이름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이름이 지워지는 속도보다 이름이 살아남는 속도가 더 빠를 때도 있습니다.


마무리 — 붉은 음료 한 잔의 무게

편의점 음료 한 병을 집어들며 생각합니다.

 

이 붉은 색소는 나일강 유역에서 수천 년 전부터 쓰였고, 서아프리카에서 환대의 음료가 됐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퍼졌고, 자메이카에서 크리스마스가 됐고, 멕시코에서 타코 가게의 음료가 됐고, 2020년대 편의점 냉장고 안에서 건강음료가 됐습니다.

 

그 모든 여정에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꽃은 하나입니다.

 

이름이 다르다는 것은 문화가 이 식물을 자기 방식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름을 알면, 그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기억하는지, 무엇을 기념하는지가 보입니다.

 

Nomen est omen. — 이름은 징조다.

 

고대 로마의 격언입니다. 히비스커스의 이름들은 이 꽃이 어떤 손을 거쳐 어떤 여정을 했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다음에 붉은 음료를 마시게 되면, 라벨의 이름 하나를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브랜드 서재 by 이안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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