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서가] 케찹 — 유리병 바닥을 두드리던 손, 그 손이 57을 몰랐을 뿐
[편의점 서가] 케찹 — 유리병 바닥을 두드리던 손, 그 손이 57을 몰랐을 뿐 안녕하세요, 이안 박입니다. 편의점 소스 코너 앞에 서 봅니다. 붉은 뚜껑의 오뚜기 케찹 옆에, 가끔은 그 유명한 녹색 병 하인즈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두 병 사이의 거리는 30센티미터쯤 되지만, 그 사이에는 약 2,000년의 시간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케찹이 생선 발효소스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쫀쿠에서 이미 다뤘습니다. 오늘은 그 여행의 후반부, 토마토가 케찹을 독점하게 된 이야기, 병 하나가 아이콘이 된 이야기, 그리고 하인즈가 한국에서 왜 졌는지를 이야기합니다.1. 토마토가 케찹을 '독점'하기 전까지 — 버섯·굴·호두 케찹의 세계쫀쿠에서 다뤘던 대로, 케찹(ke-tsiap)은 본래 중국 푸젠 방언의 발효 생선 소스였고..
2026. 7. 9.
[편의점 서가] 소주 — 몽골의 증류기가 빚어낸 750년, 그 병 안에 담긴 세 개의 역사
[편의점 서가] 소주 — 몽골의 증류기가 빚어낸 750년, 그 병 안에 담긴 세 개의 역사 안녕하세요, 이안 박입니다. 오늘은 편의점 서가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자주 뉴스가 되며, 가장 작은 글씨로 가장 긴 역사를 숨기고 있는 물건의 아카이브를 열어보려 합니다. 바로 소주입니다. 편의점 냉장고 문을 열면 초록색 병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참이슬, 처음처럼, 좋은데이, 한라산. 그 옆 상온 선반에는 도자기 병이나 갈색 유리병에 담긴 낯선 이름들이 서 있습니다. 화요, 안동소주, 감홍로. 같은 선반을 나눠 쓰고 있지만, 사실 이 두 줄은 전혀 다른 술입니다. 하나는 1965년에 태어났고, 하나는 13세기의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소주 한 병에서 몽골 제국의 증류 기술, 박정희 시대의 양곡관리 정책,..
2026. 7. 7.
[편의점 서가] 활명수 — 生命을 살리는 물, 129년이 담긴 60ml 유리병
[편의점 서가] 활명수 — 生命을 살리는 물, 129년이 담긴 60ml 유리병 들어가며안녕하세요, 브랜드 헤리티지 연구자 이안 박입니다. 오늘은 편의점 서가에서 가장 조그맣고,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많은 이름을 가진 물건의 아카이브를 열어보려 합니다. 손바닥만 한 유리병, 부채 그림 하나, 그리고 活命水라는 세 글자입니다. 활(活), 명(命), 수(水). 생명을 살리는 물. 이름 하나가 이렇게 직접적인 제품이 또 있을까요. 1897년 조선에서 탄생한 이 소화제는 아스피린과 동갑입니다. 지금까지 약 90억 병이 팔렸습니다. 한국 최초의 등록 상표, 한국 최초의 등록 상품, 한국 최초의 근대 의약품. 그리고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사실 하나 — 이 작은 병 안에 독립운동의 역사가 녹..
2026. 7. 6.
[편의점 서가] 간장 — 메주 한 덩이에서 글로벌 우마미 전쟁까지, 검은 액체가 숨긴 1,500년의 발효 철학
[편의점 서가] 간장 — 메주 한 덩이에서 글로벌 우마미 전쟁까지, 검은 액체가 숨긴 1,500년의 발효 철학 들어가며안녕하세요, 이안 박입니다. 오늘은 편의점 서가에서 가장 좁은 선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가장 복잡한 역사를 품고 있는 물건의 아카이브를 열어보려 합니다. 바로 간장입니다.진간장, 국간장, 양조간장, 어간장, 타마리, 코코넛 아미노스까지. 편의점 간장 코너 앞에 서면 어느 순간부터 선택이 곤란해집니다. 그 선반 위의 혼란은 단순한 제품 다양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반도에서 발달한 발효 철학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굴절되고, 산업화를 통해 빠르게 대체되고, 다시 전통의 언어로 복권을 시도하는 1,500년의 압축된 역사입니다. 간장 한 병에서 발효 철학, 식민지 유산, 그리고 현대 식품 산업의 ..
2026. 7. 4.
[편의점 서가] 탄산수 — 거품 한 모금에 숨겨진 브랜드 전쟁, 위기, 그리고 프리미엄의 문법
[편의점 서가] 탄산수 — 거품 한 모금에 숨겨진 브랜드 전쟁, 위기, 그리고 프리미엄의 문법 들어가며 —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멈추는 이유안녕하세요, 이안 박입니다. 편의점 냉장고 음료 코너 앞에 서면 묘한 순간이 옵니다. 1,000원짜리 탄산수 옆에 4,000원짜리 초록 유리병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같은 선반, 같은 온도, 그러나 전혀 다른 가격. 그리고 사람들은 4,000원짜리를 집어 듭니다. 쫀쿠가 거품이 어떻게 250년의 여행을 해서 우리 손에 왔는지 달콤하게 들려줬다면, 이안 박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왜 어떤 거품은 1,000원이고, 어떤 거품은 4,000원인가.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1. 편의점 탄산수 지도 — 선반 위 세계 지리편의점 탄산수 냉장고를 지리적으로 읽으면 세..
2026. 7. 2.